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국가정보원·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에서 여론조작에 집단 가담한 사실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의혹 관련자들을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조사 결과 2015년 11월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구분안 행정예고’의 의견수렴 과정은 조작 의혹으로 가득했다. 접수된 의견서는 찬성이 15만2,805명, 반대가 32만1,075명이었는데 찬성 의견서에 유독 동일한 양식의 서류가 많았다. 행정예고 의견서는 특별한 형식이 없어 같은 형식의 문서가 대량으로 접수되는 일은 흔치 않다. 국정교과서 추진에 대한 반대 여론이 확산되자 정권 차원의 ‘여론조작 작전’이 시행된 것이다.
의견 접수 마지막 날인 2015년 11월2일 당시 교육부 학교정책실장 김모(퇴직)씨는 “밤에 찬성 의견서 박스가 도착할 테니 직원들을 야간대기시키라”며 교육부 직원 200여명을 대기시켰다. 교육부 직원들은 ‘차떼기’로 들어온 의견서를 세느라 자정까지 일했다고 증언했다.
조사위는 교육부에서 보관 중인 찬반 의견서 중 ‘차떼기’ 의혹을 받는 동일 양식의 의견서 53박스를 집중 조사했다. 우선 조사한 26박스에서 4종류의 동일한 의견서 형태가 반복됐다. 서울시 양천구 모처를 주소지로 기재한 양모씨의 이름으로 118장의 찬성 의견서가 제출되는 등 동일인이 수백장씩 의견서를 내는 경우도 다수 발견됐다. 또 형식 요건을 충족한 찬성 의견 제출자 4,374명 중 3분의1에 달하는 1,613명이 동일한 주소지를 기재했다.
조선총독부와 청와대를 주소로 기재한 이완용, 박정희 등 상식을 벗어난 개인정보도 다수 발견됐다. 개인정보란에 ‘개XX’ ‘뻘X’ ‘지X’ 등 욕설을 적어 제출한 경우도 있었다. 조사위는 조작 의혹이 있는 의견서를 제출한 이들 중 252명에게 유선조사를 진행했는데 이 중 절반가량인 129명만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 맞다”고 했다. 나머지는 ‘제출한 사실이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하거나 인적사항이 맞지 않았다.
조사위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기 위한 여론조작의 개연성이 충분하다”며 “수사 과정에서 교육부의 조직적 공모나 협력 여부 등이 밝혀질 경우 관련자들의 신분상 조치 등도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