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건설자재 원산지 공개하자는데 중국 눈치보는 정부

중국산 저가 철강 국내시장 범람
국회, 공개 의무화법안 발의했지만
정부 "한중 FTA 위반 소지" 반대
업계 "자국 산업 보호의지 있는지..."



국내 건설 안전과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국회가 추진 중인 ‘건설자재 원산지 표기 의무화 법안’에 우리 정부가 반대하고 나섰다. 법안이 제정되면 중국산 철강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국내 배치를 빌미로 롯데와 현대차 등 국내 기업에 무차별 보복을 일삼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이를 국제무대에서 함구한 데 이어 이번에는 중국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12일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국회가 추진 중인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WTO와 한중 FTA를 위반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사실상 법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전달했다.


이 의원이 대표 발의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은 시공 중인 건설현장과 완공 시설물의 경우 건설자재의 원산지 표기를 강제하는 내용이다. 법안의 취지는 크게 건물·주택가격 안정화와 국민의 알 권리 강화 등 두 가지다. 건설사들이 공사에 쓴 철강재와 레미콘·아스팔트콘크리트·골재 등의 원산지가 국내산인지 중국산인지, 동남아산인지 등을 표기하면 저가 재료를 쓴 건물의 경우 건설비용이 낮아질 수 있다. 저가 원자재를 사용한 건물주가 과도하게 높은 분양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세입자 등은 저가 원자재를 많이 사용한 건물에 대한 안전도 가늠할 수 있다.

산업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사실상 중국과 동남아산 저가철강을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 최근 몇 년간 공급과잉으로 철강제품이 남아돌던 중국은 낮은 가격으로 철강을 파는 ‘밀어내기 수출’로 전 세계 철강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200억달러 규모의 철강을 수입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47%·94억달러)이 중국 제품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건설현장에서 많이 사용되는 철근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114만톤이 수입됐다.

문제는 안전이다. KS인증을 받지 못한 중국산 철강이 국내 건설현장에 공급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 관세청이 단속한 원산지 위반사례(2015년) 948건 가운데 철강제품이 111건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이 가운데 95건이 중국산이다. 이 때문에 건설자재 원산지 표기 의무화 법안에 강원도와 경북·전남·충북 등 지자체와 서울주택도시공사·경기도시공사 등이 찬성의견을 국회에 보냈다. 국토교통부도 ‘산업부가 동의하는 조건’을 달아 찬성의견을 표했다.

하지만 정작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주한중국대사관과 법률회사를 통해 검토한 결과 WTO와 FTA 협정상 내국민대우(NT)와 무역 제한적인 기술규정을 위반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내국민대우는 협정을 맺은 외국인 투자가가 내국 투자자에 비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인데 넓게 보면 협정 상대국의 제품까지 포함된다. 산업부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이 사실상 차별이기 때문에 (협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국민의 안전,생명과 연관된 조치는 협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철강은 이미 대외무역법에 따라 원산지 표시를 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북핵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WTO 서비스무역이사회에서 사드 보복을 함구한데다 이번에는 아예 중국 편까지 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미국이 보호무역을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자국 산업을 보호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구경우·김우보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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