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동소총을 기관총으로’ 범프스톡=범프스톡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전에 소총의 발달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이전까지 소총은 단발을 장전해 발사하는 방식이었다. 20세기 들어 탄알집 또는 카트리지가 개발되며 한꺼번에 6~10발을 장탄해도 한발 사격하고 나서는 노리쇠를 다시 후퇴시켜야 다음 사격이 가능했다. 여기서 한 걸음 발전한 게 반자동식. 일단 탄알집을 넣으면 탄알이 떨어질 때까지 한 발 한 발 쏠 수 있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미군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직전 개발된 M-1 소총부터 이런 기능을 갖췄다. 이후 개발된 M-14 소총부터는 방아쇠를 한 번만 당기면 탄알집의 탄알이 모두 발사되는 완전자동식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자동소총의 살상력이 너무 크다는 지적에 따라 1990년대부터 일반시민의 완전자동소총 구입 및 보유를 금지해왔다. 물론 총기전문점에서 반자동소총을 자동소총으로 개조할 수 있으나 엄연히 불법. 법으로 금지돼 있다. 이 틈을 노리고 나온 게 바로 범프스톡이다. 말 그대로 소총의 반동(bump)을 비축(stock)하는 장치다. 이 장치를 달면 개머리판과 방아쇠 손잡이가 흡수한 소총의 반동이 노리쇠를 후퇴시킨다. 반자동소총을 자동소총과 비슷하게 쓸 수 있는 범프스톡은 가격도 비싸지 않다. 2016년부터 본격 출시돼 어떤 종류의 소총에도 미화 200달러 안짝이면 부착할 수 있다.
범프스톡 성능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반동이 분산돼 자동사격이 보다 정확해졌다는 찬사와 오히려 방아쇠 뭉치가 반동으로 움직이기에 조준이 더 어려워졌다는 혹평이 상존한다. 어느 것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점은 단 한 가지. 라스베이거스 참사 이후 범프스톡이 속죄양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전국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총기 규제 목소리가 높아지자 전미총기협회(NRA) 등에서 총기 전면규제를 피해갈 대안으로 범프스톡을 규제 대상으로내세우는 분위기다. 규제 논의가 일자 미국 총기류 소매시장에서는 범프스톡을 먼저 확보하려는 사람이 늘어나 가격도 두 배로 뛰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눈여겨볼 필요 있는 대용량 탄알집=총기를 난사한 범인 패덕은 호텔 방에 있던 23개 총기류 가운데 12개 소총에 범프스톡을 끼운 것으로 알려졌다. 패덕의 반자동소총들이 정말로 경기관총급 자동소총으로 기능을 내려면 필요한 게 더 있었다. 대용량 탄창이 없다면 자동소총은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20발들이 탄알집 하나는 3~4초면 소진된다. 탄알집을 갈아 끼우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면 전투력도 그만큼 감소하기 마련이다. 라스베이거스 참사의 화면과 총성이 알려졌을 때 국내 전문가들은 ‘경기관총’으로 여겼었다. 연발 사격이 길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주요 자동소총의 탄알집 용량은 통상 30발. 패덕은 이보다 많은 총탄을 음악회를 즐기려던 관중에게 쏟아부었다. 별도의 탄창이나 탄띠 장전식으로 운용되는 경기관총급이 아니라 소총으로 보다 많은 탄알을 발사하려면 대용량 탄창을 쓰는 방법밖에 없다. 범인 패덕도 범프스톡이 달린 반자동소총에 100발들이 탄알집을 장착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00발까지 들어가는 탄알집에는 종류가 많다. 가장 단순한 형식은 옛소련 시절에 제작됐던 바나나식 탄알집. 탄알집이 총구에 맞닿을 정도로 기이한 형상이다.
대용량 탄알집의 한계. 시가진 전투 등에서 단시간 내 집중적 화력 투사를 위해 개발된 100발들이 탄알집. 송탄 불량이 자주 나고 병사들이 사용을 꺼려 도태되고 말았다.
대용량 탄알집을 찾고 개발하는 이유는 근거리 전투에서 누가 지속적으로 화력을 뿜어내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는 경험에 따른 것이다. 일선의 이런 요구는 역사가 짧지 않다. 우리 국민들에게 따발총으로 각인된 소련제 PPSH-41의 드럼형 탄창이나 미국 금주법 시대에 뉴욕 갱단이 사용하던 토미건의 원통형 탄창도 이런 흐름에서 나온 것이다. 드럼형 탄창은 오늘날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서방이나 옛 동구권 국가들이 드럼형 탄창 2개와 직선형 탄창이 결합한 더블드럼 탄창을 사용하고 있다. 가격이 비싼 게 흠이다.북한이 지난해부터 선보인 특수부대의 탄창도 대용량이다. 원통형 상자에 가득 든 탄일 100발이 나선형으로 약실에 장전되는 헬리칼 탄알집(helical magazine)은 가장 신형이지만 신뢰성이 낮다는 단점이 있다. 탄알들이 원통 안에서 마치 헬리콥터 날개처럼 돌며 장탄되는 과정에서 송탄 불량이 잦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 경호원들이 이 탄알집을 쓰는 장면이 2년 전부터 공개되기 시작해 올해는 특수부대가 대거 장비한 모습이 공개됐다.
화력을 집중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탄알집 전용으로 생산되는 총도 있다. 벨기에 총기 메이커 FN사 개발해 미래형 소총으로 1990년 공개 때 화제를 모았던 FN P90 기관단총은 전용탄창으로만 사격이 가능하다. 50발들이 탄창은 사격위치에 오면 회전하는 복잡한 방식이나 신뢰성이 높아 각국 특공대에서 채용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범인 패덕 역시 대용량 탄창을 썼다. 다만 현장에서 찰영된 그의 소총에 장착된 대용량 탄알집은 일반 탄알집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게 캐스킷 탄알집의 특징이다. 옆에서만 보면 기존 탄알집과 차이가 없이 단지 좀 더 길 뿐이다. 하지만 정면에서 바라보면 다르다. 두껍다. 기존 탄알집에는 보통 탄알이 2열로 들어 있으나 캐스킷 탄알집의 하부에는 탄알이 4열로 쌓여 있다. 간단하면서도 적재량을 크게 늘린 캐스킷 탄알집은 미국 슈어파이어사가 2010년 선보인 뒤 확산되다 이번에 존재가 부각됐다.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은 우리 군 특수부대에도 시사점을 준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은 “범프스톡에 관심을 가질 것은 없어도 캐스킷 탄알집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사시 화력 집중이 필요한 특수부대에서 대용량 탄창이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용량 탄알집이 평범한 소총이나 기관단총의 화력을 경기관총 수준으로 끌어올려 줄 수 있다는 얘기다.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