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에서 급식업체를 운영하는 박기태(55)씨는 지난달 이뤄진 식품의약품안전처 행정조사만 생각하면 억울해서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식약처에서 나온 공무원들은 흰 장갑을 들고 환풍기에 있는 먼지를 한 번 닦아낸 뒤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내렸다. 박씨는 “행정처분으로 내야 할 과태료가 20만~30만원 이라 많지는 않지만 환풍기에 먼지 하나 없는 사업장이 어디 있겠냐”며 “갑자기 행정조사를 나와서 군대 내무반 검열하듯 점검하고 처분을 내리니 영업하기 정말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행정조사는 행정기관이 정책을 결정하거나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행위다. 행정기관은 행정조사를 통해 조사대상자에게 보고·자료제출 등을 요구할 수 있다. 필요성이 인정되면 영장 없이도 사업장 현장조사와 문서열람, 시료채취 등을 통해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각 부처별로 행정조사에 대한 규정이 다른데다 조사의 필요성, 범위, 수단 등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라 개인의 권리와 자유까지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긴급상황이 아닌데도 담당 기관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행정조사에 나서는 관행이 짙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4월 스터디카페 가맹사업을 하는 B기업 가맹점주들은 독서실을 불법으로 운영했다는 이유로 서울시 교육청의 현장조사를 받았다. 시교육청은 법률에 독서실에 대한 개념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데도 자의적으로 스터디카페를 독서실로 판단하고 영장 없이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가맹점주들은 사전에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으며 현장조사에서도 교육청 관계자의 고압적인 태도에 죄인 취급을 받았다. 박모(40)씨는 “창업할 당시부터 카페로 등록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냈는데 하루아침에 범법자 취급을 받으니 속상하다”고 하소연했다.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에 대해 강북교육지원청은 독서실로 판단하고 학원법 위반을 주장했지만 성동·광진교육지원청은 카페로 인정해 처벌하지 않았다.
부처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행정조사의 목적을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등과 같이 추상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행정조사가 허다하다. 행정조사 목적이 추상적이고 광범위해 중복 조사·보고로 신음하는 중소기업도 많다.
중소기업중앙회가 511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행정부담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5곳 중 4곳인 80%가 ‘불합리한 행정조사로 업무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답했다. 이 밖에도 신규사업 추진 차질(6.0%), 컨설팅 비용 발생(5.7%), 보고지연 등에 따른 패널티 부과(4.8%), 인력투입에 따른 인건비 부담(4.3%) 등의 영향을 받는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이 행정조사를 받을 때 겪는 부담으로 지적한 부분은 부처·중복보고(41.3%), 과다한 서류제출 요구(28.4%), 불필요한 조사절차(22.5%), 조사 횟수 과다(19.8%), 복잡한 서류 양식(18.2%) 등이었다.
인천에서 타이어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박기태(52)씨는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중복조사에 허리가 휠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유해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은 기본적으로 1년에 2회 작업환경 실태 조사를 받아야 한다. 박씨가 운영하는 영세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당국의 행정조사에 대응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큰 부담이다. 박씨는 “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우리 같은 영세 업체에 행정조사는 경영 외적으로 큰 애로사항”이라며 “소규모 사업장은 검사실적에 따라 측정절차를 간소화하고 검사 횟수를 줄여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그나마 대기업은 행정조사에 대비할 수 있는 인력을 갖췄지만 영세업체는 사장이 거의 모든 행정조사를 준비해야 해 부담이 크다”며 “범정부적인 정책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미국은 긴급상황이 아닐 때 행정조사를 실시하려면 개인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도록 하고 있다. 미국 법원은 주거지나 작업장에 대한 행정조사 때 △법률에 근거 △조사목적의 정당성 △적절한 조사 범위 등의 요건을 엄격하게 따져 영장을 발부한다.
전문가들은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행정조사 관련 법령이나 지침·고시 등이 행정기관의 중복조사와 자의적 판단을 부추기고 있으며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장민선 한국법제연구원 박사는 “부처별로 행정조사의 유형과 특성이 다양해 일률적으로 법령을 일원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그럼에도 부처별로 행정조사에 관한 소관법령이나 지침·고시 등을 정리하고 부처 간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면 기업이나 개인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