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인간은 안전하다고 느낄 때 행복하다. 매슬로의 이론에 따르면 생리적 욕구에 이어 인간이 추구하는 원초적 욕구가 바로 안전이다. 그런데 안전은 균형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사람과 자연, 그리고 이들이 제공하는 각종 제도와 자원이 우리의 지성과 감성이 예상하는 범위에서 움직일 때 인간은 안전하다고 느낀다. 즉 위험이라는 외적 요소에 지성과 감성이라는 내적 요소가 작용해 균형을 이루는 것이 행복을 위한 기초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 안팎으로 우리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안의 중심에는 북핵과 정부의 포퓰리스트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을 빨리 끝내려 하고 미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저지하려는 상황에서 김정은은 남한을 볼모로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를 확보해가고 있다. 남북한 핵의 비대칭성을 해결할 방안을 정부가 제시하지 못하는 가운데 남한 주민이 북한 핵의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는 ‘위장된 평화’에 대한 우려 또한 확산되는 추세다.
청와대는 ‘우리 경제의 기초가 튼튼하고 굳건하다’며 그 근거로 수출 호조세와 10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를 보이고 있는 설비투자, 코스피의 사상 최고치 기록과 가계부채 증가율 둔화 등을 들고 있다. 하지만 착시현상을 제거하고 찬찬히 살펴보면 경제 사정이 나아졌다고 수긍하기는 쉽지 않다.
수출 호조세는 기저효과에다 반도체와 유화 및 철강의 수출가격 상승 효과에 힘입은 바가 크고 설비투자 역시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만 집중돼 나타나고 있다. 이들 분야의 투자마저 내년에는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스피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1,900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가계부채 증가율은 여전히 두 자릿수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방바닥 한두 군데는 살이 데일 정도로 끓고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몸조차 누이기 어려운 냉골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의 국민은 북핵을 머리에 이고 하루하루 불안하고도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연이어 발표되는 정부의 정책은 말로만 그럴듯하게 들릴 뿐 약속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원전 문제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어떤 제품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거기에서 얻는 편익 역시 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원전의 경우 위험성은 눈에 잘 띄는 반면 편익은 배후에 숨어 있어 비전문가들은 그 복잡한 트레이드오프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안전이란 리스크가 허용 가능한 수준으로 제어된 상태를 말하지 제로인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원전 산업과 그 생태계의 붕괴야말로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다. 에너지 비용이 상승하고 이는 우리 산업의 전반적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노동시장도 걱정이 태산이다. 정부의 ‘혁신성장’을 뒷받침할 노동시장의 개혁이 유연성 제고 양대 지침의 폐기와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리고 직접 고용 강제 등으로 뒷걸음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자영업자가 최저임금 상승으로 파산 위기에 내몰리고 있고 젊은이들의 구직난은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하며 우리 수출품에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고 자유무역의 수호자임을 자처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위선적인 정치 플레이에 골몰하고 있다.
북핵 위협의 근본적인 제거 없이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일시적인 진통제 혹은 환각제로 즐거워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다. 아프고 힘들더라도 수술밖에 길이 없다면 그 길을 결연히 택하는 정부를 보고 싶다. 포퓰리즘의 유혹에도 여론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설득하고 여론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정부의 정책이 분노와 원망의 배출구를 제공하는 포퓰리즘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되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