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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3일 열린 헌재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은 국회 헌재소장 임명 동의를 받지 못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에게 업무보고를 받을 수 없다면서 국감을 ‘보이콧’했다. 김 권한대행이 대행직과 헌법재판관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야당은 김 권한대행 결정에 따라 국감 실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헌재 측은 상황을 변화시킬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김 권한대행이 어떤 식으로든 야당 요구에 무슨 입장인지 내놓는 방안이 나온다. 헌재 안팎에서는 현재 사태가 새 헌법재판관 지명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는 1월 31일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퇴임한 후 10개월 가까이 자리가 비어있는 후임 헌법재판관을 이르면 이번 주 내로 지명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헌재 내부에서는 김 권한대행이 대행직과 헌법재판관직을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13일 국감 파행 직후 김 권한대행과 헌법재판관들은 권한대행직 역할과 책임을 고려해 결정을 신중히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관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재판관이 2명이나 빠지게 돼 부담이 크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등 장기간 미제인 중요 사건이 줄 서 있는 상황에서 헌재가 자칫 제 기능을 못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직은 유지하면서 권한대행만 사퇴하는 방법이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헌재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뽑은 권한대행이 외부 기관인 국회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물러나면 헌법이 보장한 권력분립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 헌재 내부에서는 소장 후보자 인준이 부결되면서 권한대행으로서도 자격이 없다는 일부 주장을 두고 국회가 부결할 수 있는 것은 헌재소장 후보자 지위에 한정될 뿐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헌재 고유 권한인 권한대행직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행직을 유지하는 게 최선의 선택으로 보이지만 국정감사 파행이 이어질 수 있어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김 권한대행이 입장을 밝히면서 청와대가 새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때 헌재소장 후보자도 새로 지명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청와대가 현 재판관 구도에서 다른 소장 후보자를 지명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헌재 국감 파행이 해결되지 않아 무산될 우려도 제기된다. 14년 전에도 헌재 국감이 파행을 빚은 적 있다. 당시는 사무처장이 개인 사유로 자리를 비워 차장이 대신 국감장에서 나와 여야 의원들이 반발했던 것으로 사흘 만에 국감이 재개됐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소장 권한대행 문제는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국회나 청와대가 일절 관여해서는 안 된다”며 “헌재소장을 임명할 의무가 있는 청와대가 결자해지하는 자세로 소장 후보자를 시급히 지명해 국정감사가 정상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형인턴기자 kingkong9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