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하 NIPA·National IT Industry Promotion Agency)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준정부 기관이다. 2009년 정부가 정보통신산업 정책을 체계적으로 관리·지원하기 위해 정보통신연구진흥원,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한국전자거래진흥원 3곳을 통합해 NIPA를 세웠다. 윤종록 원장이 이끌고 있는 NIPA의 현재 최대 관심사는 ‘4차 산업혁명’ 실행을 위한 준비다. 윤 원장을 만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NIPA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NIPA는 일반인들에겐 생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을 연구·수립하고, ICT 연구개발과 관련해 인력 양성, 산업 인프라 개선 같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NIPA가 배정받고 있는 예산은 1년에 1조 3,000억 원 정도다. 1조 원은 ICT를 연구하는 국내 연구소와 대학교 등을 지원하는데 쓰이고 있다(1조 원 중 60% 이상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지원하고 있다). 나머지 3,000억 원은 ICT 관련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회사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NIPA 본원은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맞춰 지난해 6월 충청북도 진천군으로 자리를 옮겼다. 원활한 정책 연구와 평가 등을 위해 서울 송파구 가락동과 마포구 상암동에도 사무실을 두고 있다.
기자가 윤종록 NIPA 원장을 만난 곳은 가락동 사무실이었다. 그는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을 지낸 뒤 2015년 NIPA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술고시 출신인 그는 KT에서 정보통신기술 경력을 쌓았다. KT 부사장을 지낸 뒤에는 2년간 미국 벨연구소에서 특임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윤종록 원장은 ICT 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알 수 있는 수치가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한국은 ICT 분야에서 1,625억 달러를 수출해(수입 897억 달러) 727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어요. 이는 우리나라 전체 무역수지 흑자(898억 달러)의 80%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놀랍죠? 그리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 ICT 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끌어 올리는 게 NIPA가 부여받은 기본적인 임무입니다.”
윤종록 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머릿속 상상력을 혁신으로 바꿀 수 있는 소프트파워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4차 산업혁명 원동력은 소‘ 프트파워’
NIPA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마친 윤종록 원장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ICBM이 있습니다. 북한이 가진 것보다 더 센 놈이에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했다고 떠들어 대는 요즘,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멀뚱하게 쳐다보는 기자에게 윤 원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한국은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빅데이터(Bigdata), 모바일(Mobile) 기술을 가지고 있잖아요. 여기에 인공지능(AI) 기술까지 융합하면, 우리는 미사일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를 가질 수 있어요.”
윤 원장이 요즘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는 기술들을 ICBM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한 셈이었다. 그는 NIPA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산업(예를 들어 조선, 자동차, 화학)의 역동성을 되찾아주는 중요한 숙제도 떠맡고 있다고 말했다. ICT를 산업에 접목시켜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윤 원장은 이를 ‘비타민 처방’이라고 표현했다.
“ICT는 모든 산업에 필요한 비타민입니다. ICT가 비타민이 되어 기존 산업을 경쟁력 있게 바꾼다는 아이디어는 바로 4차 산업혁명과 맞닿아 있어요. NIPA가 아주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셈이죠.”
한국 조선산업은 지난 25년 동안 세계 1위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그 지위가 한 순간에 흔들렸다.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이 매섭게 추격해왔다. 어떻게 해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윤 원장은 NIPA가 국내 조선소 5곳과 함께 내린 비타민 처방의 예를 들었다. “설계 자동화가 필요합니다. ICT로 가능해요. 이렇게 하면 인건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엔진에는 센서를 부착합니다. 엔진이 고장 나기 전에 미리 경고하기 위해서죠. 센서는 엔진을 모니터링 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합니다. 그 데이터를 받아 빅데이터로 분석합니다. 엔진에 이상이 생길 것 같으면 바로 선박 회사에 알려줍니다. 그렇게 하면 미리 손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유지보수 비용이 확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서비스를 선박 회사에 유료로 제공하면 되는 거고요. 우리는 이걸 ‘비타민S(ship)’라고 부릅니다.”
NIPA는 국방, 환경, 의료, 농업 분야에서도 새로운 비타민 처방을 내놓고 있다. 군인보다 휴전선을 더 잘 감시할 수 있는 스마트CCTV, 미세먼지 발생 시점과 지역을 미리 예측하는 기술, 의료 서비스 개선, 원격제어 스마트 비닐하우스 등이 그것들이다.
윤 원장은 4차 산업혁명 전도사로 유명하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의 원동력은 소프트파워에 있다며 피터 틸이 쓴 <제로투원>을 인용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제로(0)에서 새로운 1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를 의미합니다. 기존 산업혁명에선 제품을 만들 때 증기나 전기 같은 물리적인 힘이 필요했죠.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소프트파워가 그 역할을 합니다. 머릿속의 상상력을 혁신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바로 소프트파워죠. 소프트파워를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가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기술이고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NIPA와 8개 SW융합클러스터가 공동 주관한 해카톤 대회. 해카톤이란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마라톤처럼 42.195시간동안 쉬지 않고 아이디어를 기획해 프로그래밍 과정을 거쳐 창작제품을 만들어 내는 협업 프로젝트다.
4차 산업혁명 가속화 힘 보태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은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준비지수를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은 139개국 중 25위로 조사됐다. 우리 정부는 곧 ‘4차 산업혁명 위원회(가칭)’를 발족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NIPA는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준비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고 있다. 윤 원장은 현재 약 500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는 NIPA가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의 실현은 결국 ICT와 기존 산업의 융합에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속도를 높이기 위해선 여러 이해 당사자 간 벽을 낮추는 일이 선행돼야 합니다. 현재 NIPA 직원들은 정부부처, 연구 기관, 기업 등 각 분야와 긴밀하게 협업을 하고 있어요. 일손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윤 원장은 4차 산업혁명에 속도를 내려면 5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자동차로 비유해 설명했다. 그가 말한 5가지는 ‘좋은 엔진’, ‘가벼운 차체’, ‘바람이 가득 든 타이어’, ‘잘 닦인 도로’, ‘물 흐르듯 매끄러운 신호체계’였다. “엔진은 과학기술과 R&D 파워입니다. 가벼운 차체는 규제 완화를 의미하고요. 타이어 압력은 아이디어로 가득한 교육을 말해요. 도로 사정은 금융, 신호체계는 기업가 정신을 뜻하고요. 이 다섯 가지의 곱이 4차 산업혁명의 속도를 결정할 겁니다. 왜 더하기가 아니냐고요? 이 다섯 가지 중 어느 하나가 ‘0’이면 전체가 ‘0’이 되기 때문입니다. 5개 요소 모두가 다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NIPA는 4차 산업혁명 가속화를 위해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프트웨어공학센터를 부설기관으로 두고 있다. 이들을 굳이 부설 기관으로 분리한 이유가 있다. 이들 세 곳은 ICT R&D를 담당하고 있다. 윤 원장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갖고 연구를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독립성 유지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 성공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소프트웨어입니다. 머릿속에 있는 상상력을 혁신으로 만드는(4차 산업혁명) 데는 소프트파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소프트웨어고요. 그런데 한국에서 소프트웨어는 제품이든, 그걸 만드는 개발자든 홀대를 받았어요. 한국은 하드파워가 강한 나라거든요.원료를 투입해 제품을 만드는 부분이 강했기 때문에 손에 잡히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등한시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이 외부 입김에 휘둘리지 않도록, 상당 부분 독립성을 갖춘 부설기관을 만들었습니다.”
윤 원장은 한국 기업들의 4차 산업혁명 준비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있을까. 그는 국내 대기업들이 개방형 혁신에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삼성이나 LG 같은 곳은 대규모 연구단지에 연구원이 수천 명이나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들은 NIH(Not Invented Here)신드롬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여요. NIH는 ‘우리 연구소에서 개발되지 않은 기술에는 관심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용어입니다. 꽉 막힌 혁신을 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 건 ‘클로즈드 이노베이션’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기업들은 지금 다 어려워요. 과거 제록스는 개인용 컴퓨터 기술을 엄청나게 개발했는데, 바깥 세상과 공유를 하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 답답함을 느낀 연구원들이 제록스를 떠나 창업을 했죠. 이들이 창업한 기업들은 지금 어마어마한 곳이 되었습니다. 제록스는 한낱 복사기 만드는 회사로 쪼그라들었고요.”
그는 4차 산업혁명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윤 원장은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재직 때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를 강조했다. 그는 소프트웨어가 상상력을 혁신으로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초중고 소프트웨어 의무교육을 제안했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게임을 만들 줄 아는 아이들로 키워보자고 얘기했죠. 내년부턴 중고등학교 소프트웨어 의무교육이 시작되고 2019년엔 초등학교도 의무교육에 들어갑니다.”
윤 원장은 <소프트웨어가 강한 대한민국> 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잘하면 올해 연말 출간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론 소프트파워가 강한 가정, 학교, 기업, 국가와 그렇지 않은 곳으로 극명하게 나눠질 겁니다. 저는 소프트파워가 약한 대한민국을 강한 대한민국으로 바꾸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고요. 앞으로 NIPA가 거기에 힘을 더 보탤 겁니다.”
■ 윤종록 원장은…
윤종록 원장은 1980년 한국항공대학교 항공통신공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기술고시에 합격한 그는 체신부로 첫 발령받았다. 1981년 체신부는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를 신설해 분리시켰다. 윤 원장은 그때 한국전기통신공사로 발령을 받아 2009년까지 그곳에서 일했다. KT 부사장으로 퇴임한 그는 곧바로 미국 벨연구소로 건너가 특임연구원으로 2년 동안 근무했다. 1992년 연세대학교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2012년부터 연세대학교 글로벌융합공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 제2 차관에 임명됐고 2015년 3월 NIPA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츠파로 일어서라(2013)>, <호모디지쿠스로 진화하라(2009)>, <이매지노베이션(2015)>을 썼고, <창업국가(Start-Up Nation, 2010)>를 번역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