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말 우리나라는 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 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난 2000년 고령화사회(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 이상)에 들어선 지 불과 17년 만의 일이다. 고령자가 많아진다는 것은 실버산업, 즉 고령친화산업의 성장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국내 실버산업 분야의 개척자로 꼽히는 이동일 한국실버산업협회 회장을 만나봤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나타내고 있다. 고령화사회로부터 고령사회에 이르기까지 소요된 시간이 고작 17년이다. 이전까지 가장 빠르게 고령사회에 진입한 나라인 일본의 24년 기록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한국의 급속한 고령화는 기대수명 증가와 저출산 문제가 맞물리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령화나 고령사회 같은 단어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이렇게 빨리 늙어갈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한국은 비교적 젊고 활기찬 사회였다.
그런 점에서 이동일 회장은 고령화에 관해 남다른 선견지명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는 1997년 한국실버산업협회를 설립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다. 더욱이 그가 고령사회의 도래를 내다보고 실버산업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시간을 더 거슬러올라가 1980년대 중반이었다.
그는 1985년 대학원에서 식품생명공학을 전공하던 시절 성인병 연구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당뇨,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에 효험이 있는 식이요법에 대한 조언을 사람들에게 해주면서 성인병예방의학연구소 설립까지 계획했다. 그러다 점차 성인병 위험에 많이 노출된 노인들의 문제로 관심이 커지게 됐고, 나아가 본격적으로 실버산업에 대한 연구에 나서게 됐다.
이동일 회장은 헛개나무 열매의 간 보호 및 알코올 분해 효능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학위를 취득한 식품생명공학 박사다. 그는 학문적 연구뿐 아니라 기업 현장에서도 많은 경험을 쌓았다. 건강기능식품 전문 기업에서 직접 제품 연구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그가 개발한 실버식품(고령자 친화형 건강기능식품) 품목은 15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는 한국실버산업협회 설립 후 국내 실버산업의 개척자 역할을 해왔다. 지난 20년간 실버타운·노인요양원 등 노인 주거·복지시설의 건축·시공·분양·운영에 관한 컨설팅을 해왔고, 실버식품·용품 등의 개발 및 출시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
한국실버산업협회와 함께하는 협력업체만 100여개에 이른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실버타운 중 하나로 평가되는 삼성노블카운티(경기 용인시 소재)의 설계·감리 업무를 수행한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가 한국실버산업협회의 협력업체로 활동 중이다.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는 국내 최고의 건축설계 전문업체로 꼽힌다.
이동일 회장이 말한다. “제가 30여년 전 처음 실버산업과 인연을 맺은 후 미래의 고령화를 예측하고 실버산업의 토털 솔루션을 만들어보자는 의지로 지금까지 한 길만을 걸어왔습니다. 전공 분야인 식품뿐 아니라 실버산업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죠. 아울러 제가 잘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협력회사와 손잡고 컨설팅을 해왔습니 다. 그런 과정에서 실버산업에 관한 종합 컨설팅 역량과 토털 솔루션을 갖추게 됐죠.”
한국실버산업협회 회장은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에 맞춰 실버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자”고 강조했다.
고령화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경험한 현상이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인 중국을 비롯해 개발도상국에서도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1980년 무렵부터 2015년까지 30년 이상 지속된 ‘한 가구 한 자녀 낳기’ 정책의 후유증으로 인해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평가다.
세계 각국에 고령화 현상이 확산되면서 역설적으로 실버산업은 강력한 성장엔진을 장착해나가고 있다. 이동일 회장에 따르면 2020년 세계 실버산업 시장 규모는 무려 7,000조원에 달하는 한편 국내 실버산업 시장 규모만 해도 150조원을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령층 인구가 늘어날수록 자연스레 실버산업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가 지속된다면 실버산업 시장은 무한한 성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동일 회장이 말한다. “국내 실버산업은 이제 정착기를 넘어 성장기로 접어들었습니다. 과거 실버타운 분양을 둘러싸고 잡음도 적지 않았지만 이젠 엉터리로 하면 수요자의 선택을 받을 수가 없어요. 실버산업은 주거, 건강, 의료, 식품, 화장품, 패션, 레저, 관광 등 관련 분야가 광범위합니다. 국내 대기업들도 실버산업을 새로운 유망시장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수 년 전부터 많은 대기업 관계자들이 제게 실버산업 진출에 관해 컨설팅을 의뢰해오고 있어요.”
일찍부터 실버산업의 개척자로 활동해온 이동일 회장의 명성은 고령화 문제의 해법을 찾아나선 중국에도 퍼져나가고 있다. 한국실버산업협회는 지난 2012년 중국 정부의 공식 초청으로 상하이를 방문해 중국 전역 400개 지역에 실버타운 등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기술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이후 산둥성(山東省), 랴오닝성(遼寧省), 지린성(吉林省) 등 중국의 지방 성들과도 잇달아 한국의 실버산업 기술 제공을 골자로 하는 협력관계를 맺었다.
현재 중국의 60세 이상 노인 인구는 3억 명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전망에 따르면 2050년에는 중국의 노인 인구가 5억명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중국이 실버산업에서도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중국 정부는 실버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정부 예산도 수백조 원대로 투입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최소 5,000세대에서 최대 수만 세대에 달하는 실버타운도 계속 건설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동일 회장은 중국 정부와의 실버산업 협력관계를 다져나가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도 중국 산둥성에서 열린 실버산업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 전문가 자격으로 참석해 특강을 한 바 있다. 그는 “최근 사드 배치 문제로 한·중 양국이 갈등을 빚고 있는데, 실버산업분야 협력을 매개로 양국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이동일 회장은 한국을 세계적인 실버산업 강국으로 도약시킨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사단법인 세계실버산업국제연맹과 주식회사 글로벌실버월드를 설립해 ‘한류 실버산업’을 앞세워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간다는 구상이다. 2020년께 7,000조원 규모에 이를 세계 실버산업 시장을 선제적으로 공략해 국부 창출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는 한류 실버산업 전파에 뜻을 함께 하는 투자자들을 모아 글로벌실버월드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세계 전체가 고령화되고 있어 실버산업은 ‘대세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세계 실버산업 영토를 장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뜻을 함께하는 협력자, 동조자들이 모인다면 한국이 세계 실버산업 일등 국가로 도약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김윤현 기자 unyon@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