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면 다야?" 할 말 다하고 책임 없는 한국 래퍼들

수위 조절 없이 상대를 조롱하는 최근 힙합 가사들
전문가들 "래퍼들 스스로 책임감 갖고 말해야"

#경기도 양주 소재 A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최모(24)씨는 교실에서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다. ‘F***K YOU’ 등 욕설과 인신공격이 섞인 노래 가사말이었다. 최 씨는 학생들을 불러 욕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학생들은 “욕하는 거 아닌데요? 노래 부르는 건데요?”라며 반박했다. 최 씨는 유행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인데 왜 문제가 되냐고 주장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함을 느꼈다.

평소 사람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말들을 가사에 담아 기존 체제에 대한 반항과 저항이라는 ‘힙합정신의 결계’ 속에서 거침없이 부르짖는 래퍼들. 욕을 섞어 격한 감정을 표현하고, 디스랩(상대를 공격하는 랩)을 할 때는 수위조절 걱정 없이 상대를 조롱한다. 점점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가사와 소수자와 약자를 공격하는 데 표현의 자유를 사용해온 래퍼들은 과연 그에 걸맞는 책임을 지고 있을까. 유명세만큼이나 큰 논란을 불러온 그들의 가사와 행동을 통해 래퍼들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래퍼 에이솔>단순 공격형

국내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6’에 지난 8월 출연했던 래퍼 에이솔(안솔). 에이솔은 무대에서 상대 남성 래퍼를 공격한다며 신체 특정 부위를 가르키고 “괜히 존심 세우지 말고 너 그거 안 쓸꺼면 나 줘”라고 도발했다. 상대 남성 래퍼는 해당 가사를 듣자마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성희롱이 연상되는 이 가사는 방송 직후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성희롱 깜짝 놀랐다”, “보기 불편하다”는 네티즌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에이솔은 한 매체 인터뷰에서 성희롱 가사에 대해 질문하자 “재미있는 무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노엘>무반성형

노엘(장용준)은 지난 2월 전파를 탄 ‘고등래퍼’를 통해 주목받은 신예 래퍼다. 훈훈한 외모와 뛰어난 랩실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노엘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과거 조건만남(성매매)을 의뢰했던 트위터 캡처내용이 공개되면서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 신분으로 음주와 흡연을 즐기는 사진이 인터넷에 퍼졌다. 노엘은 논란이 불거지자 방송에서 하차했다. 충분히 반성의 시간을 가질 것이며 대중의 비난을 피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노엘은 자숙기간을 갖겠다고 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음원을 공개하고 다시 방송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이 지닌 음악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발산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노엘의 첫 정규앨범의 수록곡 ‘부모(父母)’에는 자신을 손가락질 하는 대중들을 향해 “XX야 XX 밉보일까봐 웃었지. 내게 뭘 바라”등의 가사로 또 다시 태도 논란이 불거졌다.


<영비>인성 제로형

영비(양홍원)는 지난 2월 고등학생 힙합 경연 프로그램 ‘고등래퍼’에 참가해 우승을 거머쥔 10대 래퍼다. 첫 회부터 실력을 입증하며 큰 인기를 얻었지만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방송에서 하차하라는 네티즌의 요구가 빗발쳤다. 영비는 방송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진심으로 후회하며 괴롭혔던 피해 학생들에게 직접 사과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영비는 고등래퍼에서 최종 우승 한 뒤 “(자신을 둘러싼 논란으로) 사실 좀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이겨내고 우승을 했다”는 우승소감을 전했다. 심지어 ‘너네한테 절대 없을 미래, 내 오늘’, ‘너보다 인성 100배 좋다. 바보 XX야’라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비판여론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이를 본 대중들은 “범죄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우상이 되어가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일까”,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안다 그렇지만 그게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라는 불편한 심경을 보였다. 현재 영비는 힙합 공연에 나서는 등 새 앨범을 준비하며 힙합 관련 매체에 출연해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

<블랙넛>대중 희롱형

‘쇼미더머니 시즌 4’에 참가한 블랙넛(김대웅)은 2015년 등장 초기 솔직한 모습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당신 면상 액면가가 우리 엄마의 쉰김치”라고 표현하는 등 듣기 거북한 표현으로 흥미를 유발했지만 조롱 대상이 된 상대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심지어 그는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일베)’ 회원이며 평소 비슷한 언행을 즐기고 있던 것을 드러났다. 지난 4월 블랙넛 음악의 소재가 됐던 키디비(김보미)는 블랙넛을 성적 모욕혐의로 고소하며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힙합이 방패가 될까 두렵다”며 “힙합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현재 가사 심의는 방송국 자체 규정에 의해 이뤄진다. 매년 ‘쇼미더머니’를 방송하는 Mnet(엠넷)은 방송 중 욕설이 있는 부분을 ‘비프음’으로 처리하는 등 자사 심의에 따라 방송을 내보낸다. 과도한 비속어와 욕설, 선정적 표현을 사전에 방지할 적절한 대책은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프로그램 차원의 부적절한 방송 내용을 경고하며 여러 차례 징계조치를 내렸지만 별다른 변화 없이 자극적 방송은 계속 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규정(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제재 대상은 채널을 통해 노출된 방송에 관해서만 심의할 수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된 프로그램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위반하는지 확인할 뿐”이라며 “사전에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힙합이 대중들에게 좀 더 설득력 있는 음악이 되기 위해서는 힙합계 차원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은우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힙합을 정말 사랑한다면 래퍼들이 자체적으로 약자를 대변하는 힙합의 본질을 지켜야한다”며 “약자를 대변하는 음악장르였던 힙합이 약자를 혐오하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에서는 힙합이 구조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회적 약자가 사회 불평등을 고발하는 주제가 주를 이루지만 한국에서는 맥락은 없고 형식만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주 교수는 “현재의 힙합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혐오발언을 자랑처럼 여기며 노래가사에 녹여내 논란을 악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며 “이는 힙합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이택광 대중문화평론가는 무엇보다 힙합의 주체인 아티스트의 뚜렷한 목적의식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힙합을 하는 당사자들은 자신이 어떤 목적으로 힙합을 하는 지 고민해 봐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 범위 확장에 목적이 있다면 약자에 대한 방어와 공격을 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힙합의 ‘파격성’이라는 특성은 본래 강자중심사회에 대한 약자의 도전의식에서 비롯된 것인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특성이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현재 한국 힙합은 욕설 및 혐오발언을 통해 힙합의 파격성을 표현하고 있다”며 “이는 힙합의 전통을 왜곡한 것”이라 비판했다.

/김연주인턴기자 yeonju18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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