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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정부의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면 중소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텐데 그러면서도 중기를 키우는 정책을 쓰겠다고 해 정책이 충돌할 수 있다”며 “어느 정권이건 정책 간 충돌은 항상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심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경제정책이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아 차가 나아가지 못하고 파열음만 낼 수 있다는 자조 섞인 하소연으로 들린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고용이 있어야 한다”며 “미국 등 선진국은 실제 이를 통해 앞서 가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평생직장을 유도하면서 노동시장이 경직되고 결국 혁신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엇박자 정책으로 기업들이 아예 채용을 안 할 수도 있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부 정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대표 발의한 관련 법안의 검토보고서에는 “비정규직 고착화를 방지할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취업 기회가 줄어드는 등 전체 일자리 창출 능력이 감소하고 기간제 근로자들이 담당하던 업무를 하도급 업체가 수행해 근로여건이 더 열악한 근로자가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명시돼 있다. 임이자 환노위 자유한국당 간사는 “법안 통과까지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합의 없이 밀어붙이면 근로자에게 오히려 도움이 안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행정해석 폐기, 중기 부담 8조원 넘어=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행정해석 폐기를 통한 근로시간 단축도 마찬가지.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주당 근로시간을 현재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면 우리 경제에 연간 12조3,000억원의 비용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모든 0~5세 아동이 있는 가정에 매월 10만원씩 주는 아동수당에 정부 임기 5년간 들어가는 돈(13조4,000억원)과 맞먹는 액수다. 특히 근로자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 부담이 8조7,000억원으로 대기업보다 타격이 클 것으로 분석됐다. 송 부원장은 “물론 주요국 중 손에 꼽을 만큼 긴 한국인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중기 경영비용이 늘어나 중기를 키우겠다는 정책 기조와 반대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저임금 인상 역시 중기에 직격탄을 날리게 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내년 최저임금 16.4% 인상에 따른 중기 추가 인건비를 15조2,000억원으로 추산했다. 물론 정부가 인건비를 보전해준다지만 지원액(3조원)이 턱없이 적다. 역시 중기를 육성하겠다는 국정 기조와 배치되는 경제정책이며 일자리 역시 줄어들 수 있다. 현장에서는 “복잡한 행정절차를 따라야 하는 최저임금 인상 지원분을 기대할 바에 일단 직원 수를 줄이겠다”는 반응이 나오는 실정이다.
◇정책 조율 컨트롤타워 필요=이 외에 유해·위험성이 높은 작업의 사내 도급 원천 금지, 양대지침(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폐기 등도 모두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이어서 혁신성장 정책을 갉아먹을 수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혁신성장을 추진하며 기업이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면 세금을 깎아주는 R&D 투자세액공제를 축소하고 법인세는 올리는 것도 앞 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 교수는 “정책을 낱개로 놓고 보면 다 좋은 것들이지만 큰 그림에 놓고 맞춰보면 퍼즐끼리 맞지 않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경제 관련 참모, 부처들이 저마다 하고 싶은 정책을 밀고 나간 결과로 보이는데 이를 조율할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미흡해서 생긴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태규·권경원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