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최불암, 오대산 오지 밥상 소개…감자인절미·메밀전병



19일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고운 님 오시니, 서러움도 가셔라 - 오대산 오지 밥상’ 편이 전파를 탄다.

오색의 계절이 가장 먼저 닿는 땅. 첩첩산중에 고운 빛깔이 물들면 오대산 품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밥상도 계절갈이를 시작한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떠날 수 없던 삶의 터전. 그 땅이 선사해준 소박하지만 그리운 맛. 삶의 애환을 담은 깊은 맛을 찾아서 강원도 오대산으로 떠나보자.

▲ 감자 캐는 계절, 그리움을 나누다 - 속사리 감자 밥상

산 정상에 운무가 넘나들 정도로 높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운두령. 그 고개 끝자락에는 감자로 유명한 평창군 용평면 속사리 마을이 있다. 요즘 이 동네 어머니들은 감자를 수확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낸다. 없던 시절, 주린 배 채워주던 고마운 작물, 감자. 김정옥 할머니에게 특히 감자전은 추억의 음식이다. 강판에 감자를 갈아서 백김치를 깔고 부친 감자전은 요맘때 온 가족이 입에 달고 살았던 음식이라는데. 감자를 솥에 삶아 찐득해질 때까지 찧은 후 동그랗게 뭉쳐 콩가루를 묻혀 먹었던 감자 인절미도 그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음식이다.

또 막 시집을 왔던 새색시 시절, 맏동서가 해주던 감자김치떡의 맛을 잊을 수 없다는 김학재 어머니도 감자 철이 오면 그 시절이 생각나신다고. 이렇게 감자를 캐는 계절이 오면, 마을 사람들은 한 상에 둘러앉아 그리움을 나눈다. 감자가 별미가 아니라 주식이었던 세월. 자갈밭을 떠나지 않고 일구며 살아온 분들이기에, 감자는 고생의 기억이 아니라 맛있는 별미가 된 것이다.

▲ 오대산의 가장 깊은 가을을 만나다 - 홍천 통마름골

늘 넉넉하고 풍성하게 내어주는 가을산. 깊은 오대산 자락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계곡을 따라 엄청난 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통마름골이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이광옥·김금녀 부부는 올해로 25번째 오대산의 가을을 맞이했다. 오지의 생활은, 봄에 이미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자급자족의 삶이라는데. 봄에 채취한 곤드레 나물을 삶아 얼려 일 년 내내 밥상을 차린다는 김금녀 어머니.


외진 산골이다 보니, 비린 생선 한 토막 상에 올리기가 여간 쉽지 않았던 시절에는 귀한 생선요리의 양을 늘리기 위해 고등어 밑에 곤드레 나물을 잔뜩 깔았다고 한다. 풋내 나는 산골에서 비릿한 맛을 보게 해 준 곤드레 고등어조림과 강원도 하면 빠질 수 없는 작물, 감자를 넣어 만든 능이 감자백숙까지. 백숙과 함께 푹 쪄낸 감자를 곰취에 싸먹는 것이 이 집의 가장 특별한 음식이라는데. 부족하다 원망하지 않고 더 가지려 욕심 부리지 않는 것. 그것이 오대산 품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일지도 모른다. 부부의 넉넉한 삶이 담긴 밥상을 만나본다.

▲ 깊고 진한 어머니의 사랑 - 12남매와 메밀밥상

김학철 어르신은 오늘도 부지런히 오대산을 오른다. 바로 산 더덕을 캐기 위해서다. 증조할아버님이 화전으로 일군 땅에서 77년 평생을 살았다는 어르신. 어르신이 캐온 더덕은 둘째 딸 영숙씨가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만든 더덕무침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늘 넉넉하게 내어주는 오대산. 그 덕분에 김학철 어르신은 슬하에 둔 12남매를 키워낼 수 있었다고 한다. 배고픈 시절 잘 먹이지 못하고 입히지 못해 아직도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조만원 어머니.

열일곱에 시집와 12남매를 낳고 길렀던 세월. 모질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어떤 자식 하나 허투루 키우지 않았다. 그 시절 자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일등공신은 바로 메밀이다. 사실 메밀을 먹는 일도 호사스러운 일이었다는데. 이 마을에서는 빠질 수 없는 반찬인 염장해 보관해 두었던 강원도 식 갓김치를 무쳐내고 어머니는 세월이 깃든 솜씨로 메밀전병과 메밀칼국수를 뚝딱 만들어 한상을 차린다. 어머니의 밥상에는 그때 그 시절의 정성과 손맛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깊고 진한 어머니의 사랑을 느껴보자.

▲ 배곯던 시절,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주던 무 밥상

한껏 가을을 맞은 오대산에는 싱싱한 푸른빛을 자랑하는 고랭지 무 밭이 있다. ‘가을무는 과일보다 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속이 알차고 달큰한 무는 어린 날 이창옥 어머니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고마운 작물이었다. 지금이야 무가 부재료지만 30년 전 이 마을에서 무는 주식으로 여겨졌었다. 밥 한번 배불리 먹기 어려웠던 시절, 열여덟의 나이에 서울 부잣집에 가정부로 들어갔던 이창옥 어머니.

가난이 싫어 고향을 떠났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올 곳은 고향이었다. 귀한 딸 남의 집 살이 하는 것은 볼 수 없다던 어머니의 만류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이창옥씨에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무시루떡. 그리고 쌀보다 무가 많은, 어린 시절 질리도록 먹었던 무밥까지. 산골 오지의 결핍이 만든 음식. 그러나 이제는 그리움이 되어버린 그 밥상에 함께 해본다.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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