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다툼에서 언론의 중요성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애초 루터의 본거지인 독일 동북부 비텐베르크는 당시 기독교 문명권의 변방이자 벽지였다. 르네상스 당시 로마가 가지는 위치와 비교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루터는 미디어를 활용할 줄 알았다. 그는 논쟁이 끝날 때마다 그 내용을 기록하고 인쇄하고 배포했다. 루터는 교황청 사람들 앞에서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고 토론에서는 어눌했지만, 그의 인쇄물에서 그는 상대의 모순을 신랄하게 공박하고 믿음의 확신에 가득 찬 ‘혁명가’로 그려졌다. 온 언론을 적으로 돌렸지만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효과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미국의 ‘정치적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교황청은 루터의 미디어 전술을 얕잡아봤다. 루터가 독일어와 라틴어로 그의 주장을 배포해 세력을 키워가는 와중에도 교황청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교황청은 인쇄물의 영향력을 파악하고 뛰어들지만, 소위 문명의 언어라는 라틴어만을 고집해 독일 민중 대부분을 독자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루터와 지지자들은 교황의 인쇄물 출간을 방해하거나 심지어 사재기해 없앨 정도로 집요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상반된다. 결국 루터는 독일 민중들과 소외받던 지식인 사이에서 가톨릭 제국의 부당한 압력에 저항하는 독일의 민족 영웅이 됐다.
이 책은 그동안의 종교개혁 관련 서적들의 ‘신실한 믿음의 사도 루터’ 대 ‘부패하고 무능한 교황’이란 선악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정치, 경제학적인 배경으로 종교개혁에 접근했다. 저자는 바티칸 문서고에 잠들어 있던 당시 교황청의 회의록, 칙서, 외교관의 보고서를 발굴하고 이 글을 루터 지지자들의 글과 교차검토했다. 면벌부는 루터가 태어나기 몇백년 전부터 판매돼왔다. 중동, 유럽의 난민 등 현대의 많은 종교 분쟁의 원인이 사실상 정치, 경제학적인 문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종교개혁 역시 갈등의 원인은 소외된 권력을 쥔 로마 교황청과 이에 반기를 든 독일의 지배층 사이의 갈등이었다. 2만5,000원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