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까지 계속 운전을 할 수 있는 월성 1호기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이 확인되는 대로 월성 1호기의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재차 밝히면서 조기 폐로 여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연합뉴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듬해 있었던 2012년 프랑스 대선. 원전 비중을 오는 2025년까지 50%로 줄이고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건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가 승리한다. 2009년 프랑스 전력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75%였다. 공약대로라면 원전 26기를 폐로(廢爐)해야 하는 상황. 올랑드 전 대통령이 취임 후 내디딘 첫발은 ‘공공토론’이었다. 9월 정부가 로드맵을 제시한 뒤 국민대토론회만 11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진행했다. 공공토론을 주관한 독립행정기관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의 최종보고서를 바탕으로 ‘에너지전환’ 법안이 상원을 통과한 게 2015년 3월. 국민-전문가-의회를 거쳐 공약이 정책으로 결정되기까지 3년여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프랑스와 비교하면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은 ‘졸속’에 가깝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24일 국무회의를 열고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 및 원전 축소방안을 의결할 계획이다.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이 난 지 불과 4일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월성 1호기의 조기 중단을 공식화했다. 이 같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담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도 11월 발표 예정이다. 공약이 정책으로 이어지기까지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이 같은 탈원전 정책 드라이브를 두고 앞뒤가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전문가는 “에너지 수급계획의 가장 큰 원칙은 국민 부담이 어떻게 변할지 감안해서 수급 계획을 짜야 한다는 것”이라며 “지금은 향후 5년 안에는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는 주무부처 장관의 말만 믿고 15년 에너지 대계를 짜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탈원전을 둘러싸고 각 기관이 내놓은 전기요금 인상 시나리오는 천차만별이다.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탈원전정책으로 2030년까지 전기요금이 21% 인상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황일순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가 추정한 수치는 230%였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김정훈 자유한국당 의원은 원전의 본격적인 퇴출이 시작되는 2024년부터 당장 20%가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탈원전 ‘대리전’이었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도 전기요금 인상을 놓고 찬반 진영이 격론을 벌였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원전과 신재생의 발전원가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미국 에너지정보청(EIA)과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의 보고서를 인용해 2022년과 2025년이면 신재생에너지가 원전보다 싸진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세계에너지구(IEA)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원전의 발전원가는 1㎿h당 40.42달러로 태양광(142.07달러)이나 풍력(147.45달러)의 30% 수준이 채 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주무부처인 산업부가 내놓은 추정치는 현재 없는 상황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재생이 과연 싼 것인지, 비싸면 얼마나 비싼지 등에 대해 정부나 전문가 등이 합의된 결론을 낸 뒤 국민이 이에 따른 에너지 전환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지금은 각 진영이 구미에 맞는 수치를 취사선택해 주장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공식화한 월성 1호기 조기 중단도 역시 선후가 뒤집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전의 빈자리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메우겠다는 게 정부의 대안이지만 현재도 LNG 비축기지가 태부족인 상황이다.
탈원전 정책도 시간을 두고 공론조사에 부친 뒤 내년 예정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에너지 전환정책을 확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공학부 교수는 “전원 믹스를 어떻게 가져갈지를 결정하는 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내년에 세우는데 이를 계기로 탈원전 정책을 다시 한 번 깊게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며 “전기요금 부담이 어떻게 되느냐를 두고 국민이 어느 정도의 경제적 부담을 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놓는다면 그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적정 전원믹스를 결정하는 과정으로 나눠서 접근하는 게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