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성장 '부동산 자산운용시장'의 명암] 20년전 불모지서 '70兆 시장' 환골탈태

IMF 후 외국계 투자자 유입으로
부동산 자산 유동화 시장 성장
어깨 넘어 배웠던 국내 운용사
금융위기 후 해외 투자 본격화
글로벌 시장서 존재감 자리매김

한국경제가 IMF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1999년 네덜란드계 투자자인 로담코가 강남 테헤란로의 현대중공업 사옥을 1,250억원에 사들인다. 외국계 투자자의 첫 한국 부동산 투자였고 이것으로 국내에 부동산 자산운용 시장이 비로소 열렸다. IMF 이전만 하더라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부동산자산운용 시장은 외국계 큰손들이 들어오며 시작됐고 20년이 채 못돼 7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는 부동산 운용시장에 국내 투자자들도 외국 자본들과 어깨를 겨룰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과도한 경쟁 탓에 이 시장에서도 양극화의 그늘이 드리워 지는 모습이다. 국내 부동산자산운용 시장의 명과 암을 짚어본다.

22일 금융투자협회와 한국리츠협회에 따르면 9월말 기준 부동산펀드의 순자산 규모는 57조 5,832억원, 리츠는 12조 385억원이다. 부동산펀드와 리츠를 합한 순자산 규모는 69조 6,217억원으로 10년 전인 2007년 말(9조 4,528억원)에 비해 7배 이상 성장했다.

한국 부동산자산운용 시장은 크게 두 시기를 거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IMF 이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와 그 이후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국내 시장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외국계 투자자들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IMF 이후 외국계 투자자들이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을 사는 것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1999년 로담코의 현대중공업 사옥 투자에 이어 싱가포르투자청(GIC)이 같은 해 말 잠실에 위치한 시그마타워를 한라그룹으로부터 사들였으며,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이 당시 한국 부동산에 투자하며 큰 수익을 거뒀다.


한국 투자자들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국내 시장에서 큰 수익을 거둬가는 외국계 투자자들을 보면서 빠르게 배우고 성장했다. 2001년 국내 최초의 리츠 자산관리회사인 코람코자산신탁이 설립됐다. 이어 부동산펀드 운용사인 맵스자산운용(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등장했고, 현재 업계 1위인 이지스자산운용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국내 부동산자산운용시장 발전을 이끌고 있다.

로담코의 현대중공업 사옥 매입을 주선했던 전경돈 세빌스코리아 대표는 “리만 브라더스 사태 이전만 하더라도 해외 투자자들이 부동산을 사기만 하면 가격이 크게 오르던 시기였으나 이후 국내 투자자들과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수익률이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국내 부동산자산운용 시장도 새로운 시기로 접어들었다”며 “이후 2013년께부터는 우량 자산에 투자하는 해외 코어펀드도 들어오기 시작하는 등 돈의 성격이 다양해지면서 한국도 보다 선진화된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창기 오피스에 국한됐던 부동산자산운용 시장도 지금은 물류센터, 리테일, 임대주택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부동산자산운용 업계가 두 번째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부동산 투자가 본격화 되면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 기관들의 돈이 묶인 가운데 아시아 투자자들에게도 기회가 오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을 필두로 주요 기관들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투자를 시작했다. 국내 운용사들도 그간 해외 운용사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키운 실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했다. 금투협에 따르면 2007년 말 1조 1,894억원(순자산 기준) 규모였던 해외 부동산 펀드 설정 규모는 3분기 말 28조 9,609억원으로 24배 가까이 성장했다. 전체 부동산 펀드 순자산의 절반에 달한다. 전 대표는 이 같은 한국 부동산자산운용 시장의 변화와 의미에 대해 한 마디로 “다른 나라가 100년이나 200년에 걸쳐 쌓아야 하는 경험을 한국은 20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경험했으며,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사례는 없다”고 강조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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