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자들은 디지털 화폐가 돈의 사용법과 기업의 자금 유치 방법을 변화시킬 것이라 말하고 있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그저 이 현상을 일시적인 거품으로 보고 있다. 올해 안에는 어느 쪽이 맞을지 판가름이 날 것이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워털루 Waterloo에 있는 한 신생 벤처기업이 몇 달 후 대규모 ‘통화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실험을 거치면 신규 사업 모델이 인터넷상의 차세대 경제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허망하게 폭발한 힌덴부르그호 *역주: 1937년 독일을 출발해 미국에 착륙을 시도하다 내부 수소가 폭발하는 바람에 추락한 비행선 처럼 수 십억 달러 규모의 거품이었는지 판가름이 날 것이다.
이 실험이 다루고 있는 주 개념은 암호 화폐다. 기존 은행이나 정부가 발행하던 것과는 다른 독립적 형태의 디지털 화폐를 지칭한다. 지난 몇 달 간의 열광적 지지와 높은 변동성 속에서, 디지털 화폐 시장은 1,000억 달러 이상으로 폭등했다(그 후 다시 600억 달러로 급락했다). 이른바 토큰 판매(token sales) 혹은 가상화폐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s)의 규모가 수억 달러까지 치솟았고, 거의 무에서 엄청난 가치의 재물이 창출됐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런 현상을 17 세기 네덜란드 튤립 파동(tulip-bulb manias) *역주: 17세기 네널란드에서 벌어진 과열 투기현상., 사실상 최초의 거품 경제 현상으로 인정되고 있다 에 비유하며 “곧 거품이 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옹호론자들은 디지털 화폐가 향후 IT기업의 주요 자금 조달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료 서비스 이용에 많은 시간과 집중력, 에너지를 들이는 일반 사용자들과 달리, 몇몇 초거대 IT 대기업들은 이 서비스를 통해 모든 이익을 독식하고 있다(페이스북처럼 말이다). 반면 암호 화폐는 사용자들의 플랫폼 기여도에 따라 아직은 완전한 형태가 아닌 화폐로 보상을 해주고 있다. 사용자들이 ‘좋아요’ 숫자로 보상을 받는다고 가정해보라.
지금까지 디지털 화폐의 명목가치는 상승했지만 사람들은 대개 투기를 목적으로 이 화폐를 구매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고객층을 확보한 한 대기업이 앞으로 몇 달 내에 월별 활성사용자(MAU,
Monthly Active User) 1,500만 명을 대상으로 암호화된 신규 토큰 실험을 최초로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면 하루 만에 디지털 화폐 사용자 수가 5배 가량 늘어날 수 있다. 이 기업은 미국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메신저 앱 킥 Kik 이다. 킥은 토큰 발행을 통해, 사용자들이 네트워크상에서 서로 거래를 하도록 만들려 하고 있다.
이 회사는 토큰 판매 개시에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100개가 넘는 초기 프로젝트(브레이브 Brave, 시빅 Civic, 테조스 Tezos 등)에 참여할 예정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론 토큰을 단기 수익을 위한 거래나 투기성 매매, 투기 목적이 아닌, 실제 활발한 거래를 유도하는데 활용하는 선두 기업이 되길 바라고 있다.
킥의 설립자 겸 CEO 테드 리빙스턴 Ted Livingston은 지난 2014년 앱으로 즐기는 비디오게임 킥 포인트 Kik Points를 첫 출시했을 때에도 이미 디지털 화폐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킥 포인트는 지난해 데모 버전을 철수시켰지만 그는 매우 흡족해했다. 이용자들 간 하루 평균 포인트 거래 횟수가 30만 건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같은 기간에 이뤄진 비트코인 월 평균 거래 건수의 3배가 넘는 수치였다. 킥의 고객들은 주로 포인트를 사용해 ‘스티커’와 ‘스마일리 smileys’를 구매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이용자간 송금을 넘어, 피자 주문이나 프리미엄 콘텐츠 구매까지 모든 것을 킨 토큰 Kin token(곧 신규 출시될 온라인 코인)을 통해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다.
킥은 총 10조 달러 규모의 킨 토큰을 발행할 예정이다. 그 중 1조 달러는 일반에 판매하고, 3조 달러는 자사가 보유할 계획이다. 나머지 6조 달러는 비영리 목적으로,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위한 보상 프로그램에 사용할 예정이다. 리빙스턴은 킨 토큰이 “경쟁을 하고, 화폐로 통용되고,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새 방법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과거의 ICO가 일종의 조짐에 불과했다면, 킥은 어떤 형태든 상당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킨 토큰이 실질적으로 널리 통용돼 앱 안팎의 소규모 경제에 불을 지필 수 있을지 예의 주시할 것이다. 킥의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전 세계가 거품이라고 여겼던,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진 이론뿐이었던 토큰 기반 사업 모델의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다.
킥을 포함한 여러 회사에 블록체인 관련 기술을 조언하고 있는 코인펀드 CoinFund의 공동 창립자 제이크 브루크먼 Jake Brukhman은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여러 전통적 형태의 기업들에겐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디지털 화폐 열성지지자들은 트위터 Twitter와 스냅 Snap, 레딧 Reddit 같은 회사가 결국 미래 토큰 판매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결국엔 이런 낙관적 전망이 실현되든, 아니면 디지털 화폐 현상-수십 억 달러의 가치를 정당화하기 위해선 광범위한 적용이 필요하다-의 거품이 꺼지든 둘 중 하나로 정리될 것이다. 후자가 되면 꿈에 부풀었던 많은 기업가들과 투자자들은 하루아침에 빈털터리 신세가 될 것이다. 차세대 인터넷 유망 산업인 가상화폐는 킨보다는 조금 더 발전하겠지만,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날 것 같지는 않다.
화폐 탄생 이전과 이후
가치의 변화 방식은 문명화 과정에서 꾸준히 등락을 거듭했다.
소떼와 곡식-기원전 9,000년
상품은 물물교환이 쉬워 인류 초창기 돈처럼 사용됐다. 특히 소는 스스로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교환이 더욱 편리했다.
개오지 조개껍데기-기원전 1,200년
전 세계 많은 곳에서 조개 껍데기가 화폐로 사용됐다. 튼튼했기 때문이었다.
청동 미니어처-기원전 1,100년
중국의 초기 청동 ‘동전’은 개오지 조개 껍데기 형태와 유사하게 만들어졌다. 그 후엔 다양한 모양이 나타났다.
동전-기원전 600년
첫 동전은 메소포타미아와 국경을 맞댄 리디아 왕국에서 탄생했는데, 금과 은을 혼합해 주조했다.
종이 지폐-12~13세기
1295년 중국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탐험가 마르코 폴로는 중국의 종이 화폐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유럽은 17세기가 돼서야 종이 화폐를 널리 사용했다.
전자 화폐-1850년
웨스턴 유니언 Western Union이라는 회사가 전산망을 구축해 전국 송금이 가능해졌다.
신용카드-1950년
다이너스 클럽 Diners Club이 외식을 하는 직장인을 겨냥해 나중에 결제하는 마분지 카드를 처음 선보였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Robert Hacke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