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트럼프, 북한·이란 해법 철회냐 고수냐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비즈니스 거래하듯 담판은 안돼
상대국 국민 납득시킬 명분 줘야
국제적 협상 성공 이끌 수 있어



켄 번스와 린 노빅의 베트남전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전장에서 적과 아군으로 맞섰던 평범한 군인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내게 절절히 다가온 베트남전의 가장 비극적 측면은 미국이 베트남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기에 앞서 “이 전쟁에서 우리는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실토한 린든 존슨 대통령의 육성 녹취록을 듣는 것이었다. 존슨의 딜레마는 역대 대통령들 모두가 직면하기 두려워하던 것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북한 및 이란 문제와 관련해 스스로 자초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고문단과 훈련 교관으로 베트남에 파견된 미군의 수효가 2만명 미만에 불과했던 지난 1964년 5월, 존슨은 그의 국가안보보좌관인 맥조지 번디에게 “지난밤 이 빌어먹을 문제로 고심하느라 잠을 설쳤다”고 불평한다. “일단 우리가 전면개입을 하게 되면 도무지 빠져나올 방법이 없어. 1만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적과 싸워 승리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잖은가. 내 생각에 이건 싸울 가치가 없는 전쟁이야.”

존슨의 말은 계속된다. “오늘 아침 여섯 명의 자녀를 둔 육군 병장을 만났네. 도대체 그에게 무엇을 위해 베트남으로 가라고 명령해야 할까. 베트남이 대체 내게, 미국에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지.”

존슨이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모두 타당했다. 그는 베트남이 미국의 국익에 결정적이지 않을뿐더러 곧바로 수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럼에도 그는 철수라는 논리적인 결론에 다가서지 못했다. 그의 이전과 이후의 역대 대통령들이 그러했듯 존슨 역시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어떤 대통령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자신의 또 다른 멘토인 리처드 러셀 상원의원과의 녹취 대화에서도 존슨은 “베트남에서 도망친다면 아마도 의회는 나를 탄핵하겠지”라고 물었다.

미국의 대통령이면서도 미국이 현재의 코스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고 시인할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존슨은 베트남의 미군 병력을 2만명에서 50만명으로 증원했고 결과적으로 인도차이나와 미국사회, 그리고 자신의 대통령직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베트남의 경우는 극적인 본보기에 해당하지만 외교정책에서 후퇴와 전진이라는 선택에 직면할 경우 미국은 일반적으로 후자를 택한다.


북한과 이란을 상대하는 결정적인 두 개의 무대에서, 트럼프는 뚜렷한 이유 없이 미국의 위험부담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전임자들에 비해 훨씬 강력하게 보이기를 원하는 그는 두 국가와의 협상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이란이 탄도탄개발을 중지하고 시리아·이라크와 예멘 등지에서 준동하는 대리 세력(proxy forces)에 대한 일체의 지원을 끊기 원한다. 물론 워싱턴이 요구한다고 해서 북한과 이란이 백기를 든 채 투항을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미국 측 요구를 거부하면 트럼프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까. 한 발 뒤로 물러설까, 두 발 앞으로 나아갈까. 고조되기만 하는 긴장은 도대체 어디쯤에서 멈출 것인가.

트럼프는 국제적 협상을 마치 비즈니스 거래인양 생각한다. 그는 언제든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러나 국가 간 협상과 비즈니스 거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국제무대에서 얼굴을 맞댄 상대국 지도자도 국내 정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역시 패자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최근 내가 만난 한 유력한 사업가는 “트럼프가 자신과 상대방 단둘이 마주 앉아 담판을 짓는 비즈니스 거래 놀이를 하고 있다”며 “그러나 방 밖에는 두 국가의 국민이 있다. 협상가들에게는 그것이 큰 제약이다. 국제협상은 단 두 명이 펼치는 게임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제협상이 성공하려면 ‘윈-윈’이라는 상생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 지도자는 그가 체결한 협상으로 국민을 납득 시킬 수 없다. 그러나 트럼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은 꼭 이겨야 하고 상대는 반드시 져야 한다고 믿는다.

멕시코의 한 고위관리는 내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도 가능하고 국경장벽 설치기금에 관한 해법도 찾을 수 있지만, 먼저 트럼프가 일부 양보를 함으로써 우리도 나름대로 승리를 선언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양보는커녕 처음부터 우리에게 굴욕감을 안겨줬고 이로 인해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그와 아예 거래할 수가 없었다. 멕시코의 어떤 정부도 워싱턴에 무조건 항복하는 것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좋은 평판을 구축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숱한 논란이 일기는 했어도 과거에는 트럼프의 협상법이 어느 정도 통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부동산업자로 협상에 나서는 게 아니다. 그때보다 상황이 훨씬 복잡하고 걸린 판돈의 액수도 훨씬 높다. 천문학적으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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