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빌딩과 럭셔리한 뷰티·헤어살롱숍 등으로 빽빽이 둘러싸인 청담동 준오아카데미. 강윤선(사진) 준오뷰티 대표를 만나기 위해 그의 서재인 8층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이곳이 헤어숍의 전쟁터인 청담동이라는 생각이 말끔히 지워졌다. 수백 권의 책들이 꽂힌 서재를 중심으로 양쪽에 작은 힐링의 숲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명 ‘윤선의 숲’. 실제 산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물론 가을을 맞아 대롱대롱 열린 감나무와 이름 모를 작은 풀, 여기에 민들레까지 조심스레 둥지를 튼 작은 숲은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외부와는 달리 평화로운 모습 그 자체였다.
윤선의 숲만 보더라도 강윤선 대표의 ‘경영 에스프리(Esprit·정신)’이 엿보였다. “윤선의 정신은 서로 성장한다, 나무처럼 꽃처럼 숲처럼 성장한다, 멈춘 나무는 뽑아야 하니까 우리 모두 성장을 멈추지 말아야 하다는 것이에요.”
전국에 136개의 준오헤어 직영시스템을 운영하며 2,500여명의 직원들을 둔 강윤선 준오뷰티 대표. 40년간 국내 미용 역사를 손수 써온 그는 미용인의 꿈을 가지고 도전하는 이들에게 꿈과 전문기술·지식을 심어주는 디자이너 양성 교육 프로그램 ‘준오아카데미’를 운영하는 한국 최대 미용사관학교 총장이기도 하다.
●가난과 싸운 어린 시절..미용 가위로 세상을 디자인하다
강 대표는 배정원서 값 600원이 없어 야간 중학교에 들어갈 정도로 어릴 적 가난과 싸우며 살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미용에 특히나 관심이 많던 그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동네 미용실에서 작은 ‘사건’을 경험한다.
그가 머리를 하는 동안 한 아주머니가 들어와 미용사에게 짐을 좀 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미용사는 안 된다며 단번에 이를 거절한 것. 이 장면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강 대표는 “‘나라면 이럴 때 친절하게 받아주고 저 아주머니를 단골로 만들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군요. 그때 원래부터 관심이 있던 미용을 내 기술로 만들어보자는 결심이 섰어요”라고 회상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연탄집게를 달궈 미용사 흉내를 내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놀면서 아카시아 잎을 떼어낸 줄기로 파마를 해주기도 하던 자신을 떠올렸다. 이를 계기로 강 대표는 1년간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곧바로 서대문구에 있는 무궁화기술고등학교로 옮겨 본격적으로 미용 일에 뛰어들었다.
졸업 후 미용실에 취직한 그는 타고난 감각과 성실히 쌓은 실력으로 1년 만에 당시 미용실들이 패권을 다투던 명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1979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강 대표는 트렌드세터 여대생들이 모여든다는 돈암동에 그리스 로마 여신인 ‘헤라(로마어 ‘주노’)’의 이름을 딴 ‘준오미용실’을 처음 열었다. 많을 때는 하루에 60명의 머리를 만졌을 정도로 그는 잘나가는 ‘선생님’이었다.
●집 팔아 직원들과 유학..앞선 교육투자로 준오아카데미 일궈
준오미용실은 여대생 헤어 스타일의 유행을 만들어냈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서비스와 남다른 기술이 소문나며 제2의 준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더위에 지친 고객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기도 했다. 감기로 고생하는 고객에게는 따뜻한 차를 건넸고 늦은 저녁에 펌을 마친 고객은 정류장까지 에스코트해주는 고객 친화형 맞춤형 서비스를 일찌감치 펼쳐 회자가 됐다.
그는 “당시 돈을 많이 벌었지만 직원들이 일할 공간이 부족해 그들이 성장하기 위한 숍이 지속적으로 필요했다”며 “직원들은 나의 성장동력이며 동반성장 파트너라는 개념이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이 갈수록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자 강 대표는 길을 보여주는 스승의 역할을 자처했다. 1990년대 초 그는 자신의 집을 팔아 20여명의 직원들을 데리고 두 달간 글로벌 헤어디자이너의 사관학교인 영국 ‘비달사순’ 아카데미를 듣기 위해 유학을 떠나는 도전을 시도한다.
“체계적인 교육도 없이 미용실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배워야 하는 당시 후배들이 안타까웠어요. 해외 유학파 디자이너를 불러 직원 교육을 맡기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죠. 헤어 미용 원리나 공식과 같은 ‘스탠다이제이션(표준화)’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진기술을 갖춘 영국으로 가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직원들은 새로운 미용 문화를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유럽은 그 자체가 디자인 천국이자 아트였습니다. 길거리 전부에 아티스트 천지였고요. 유럽의 건축 양식을 보고 짧게나마 감각을 깨우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죠.”
교육에 대한 투자는 더 큰 가치와 성과물로 나타났다. 5년 뒤 헤어디자인 교육부터 리더십 교육, 전문 스타일리스트를 양성하는 준오아카데미가 탄생한다. “성장이 멈추면 모든 것이 멈춥니다. 성장은 교육이 뒷받침돼야 하는 거죠.”
●직원의 성장이 밑거름, 낮은 이직률 자랑 …억대 연봉 디자이너만 200여명
‘미용사’는 많았지만 ‘헤어디자이너’는 적었다. 직업관에 따라 누구는 미용실 언니, 누구는 헤어디자이너가 됐다. 강 대표는 헤어 미용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 “헤어 미용을 반듯하게 하고 싶었어요. 실력 있는 친구들과 함께 가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죠.”
강 대표는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인센티브제로 충분한 대우를 한다. 전국의 준오헤어를 직영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적어도 디자이너 200여명이 연봉 1억원 이상에 달한다. 덕분에 준오헤어는 이직률이 낮기로 유명하다. 10년 이상 된 직원은 400여명, 20년 장기근속자가 50명을 웃돈다.
그는 경영자는 직원을 성장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무한 가능성을 사장시키면 안 된다는 것.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온 직원들 중 박사가 되거나 MBA를 딴 사람도 있고 본부장급은 대부분 대학원을 나왔을 정도다.
그는 “모든 것이 디자인인 세상에 살지만 헤어디자인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가 명심해야 한다”며 “머리가 외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80% 이상 아니냐”고 말했다.
●아시아 헤어 미용교육 허브로 발돋움..‘격’을 파는 준오 될 것
제품 없이 콘텐츠만으로 로열티를 받아 달러를 벌어들이는 K뷰티 기업은 준오헤어가 유일하다. 현재 준오헤어는 중국 및 말레이시아 등 해외 파트너십을 통해 기술 및 리더십 교육을 진행하면서 아시아계 헤어디자이너 교육의 허브로서 입지를 쌓고 있다. 준오헤어는 8권의 전 세계 헤어디자이너들의 전문가용 교육 가이드 책도 내놓았다.
“며칠 전에는 브라질의 한 미용 회사가 기술을 전수해달라고 찾아왔어요. 중국·싱가포르·대만 등에서 6개월 장기 교육 코스를 해달라고 오는 ‘단골’들이 많습니다. 갈수록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아카데미가 차지하게 되겠죠.”
준오헤어는 내년에는 ‘준오’의 이름을 가진 헤어 브랜드도 선보인다. 강 대표가 만족할 만한 제품이 나오기까지 20년이 걸렸다고 귀띔했다. 그는 “질(quality)에서 격(class)의 시대로 왔다. 서비스에도 제품에도 사람에도 ‘격’이 있다. 격을 파는 준오가 되겠다”고 자신했다.
●“교육은 인간의 안목을 물들인다”…‘건물책’ 라운딩만으로도 멘토링
아카데미 건물 안은 100년 넘은 외국 기업의 그것과 같았다. 기업 아이덴티티가 분명했고, 건물 내벽에 장식된 직원의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동판 등의 분위기가 그러했다. 1층부터 8층까지 벽에는 강 대표의 철학이 새겨져 있어 8층을 모두 훑고 나니 한 권의 건물책을 읽은 듯 했다. 강 대표는 “얼마 전에는 유니버셜 발레단이 방문해 건물을 둘러 보고 리더십 및 체험 교육을 받고 갔다”며 “그들이 건물 라운딩 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워간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나는 내가 좋다, 나는 내가 정말 좋다. 태양은 꽃잎을 물들이지만 교육은 인간의 안목을 물들인다. 다른 사람을 성장시키면 나 자신도 성장한다. 생각을 크게 하라, 작게 하는 것보다 돈이 더 들지는 않는다.믿음이 현실을 만들어 낸다, 성공의 크기는 마음 속 간절함의 크기 만큼이다. 내 인생은 내 책임, 삶은 당신이 만드는 것이다, 이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실망과 좌절도 내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라.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생에서 어떤 중요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구름 위에는 늘 태양이 있다. 내 인생이 남에 의해 통제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1~8층 준오아카데미 건물에 새겨진 글귀)”
그는 “삶은 하루 인생에 따라 결정됩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위해 나눗셈을 잘하면 되는 거죠. 목표를 하루 단위로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면 어느새 최고가 돼 있어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는 것처럼 행동을 먼저 하면 마음이 따라온답니다. 45세까지는 체력 나이고 이후는 능력의 나이니 젊어서 체력을 길러 많은 경험을 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글= 심희정기자 yvette@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강윤선 대표는
△2007년 International Trend Vision Award 2007 골드트로피 수상 △2011년 보건복지부 장관상 수상 △2015년 준오아카데미 청담사옥 신축 △2008~2011년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2012년 경복대 ‘준오헤어디자인과’ 설립 △2009~2014년 경복대 겸임교수 △2011~2016년 서경대 대학원 특임교수 △2012년~현재 ㈜준오뷰티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