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설 내 놓지 못하면 독자들 깔볼 것"

"작가는 젊은 세대 공감할 수 있는 작품 발표하고"
"정부, 문학 없이는 영화, 연극의 미래도 없다는 사실 명심해야"
제자들이 마련한 윤후명 작가 등단 50주년 기념회
지난 22일 인문학 카페 '소설앤소셜'에서 열려

윤후명(사진 오른쪽 위부터 반시계방향) 작가가 등단 50주년을 맞아 인문학 카페 ‘소소’에서 열린 기념회에서 제자들이 던진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최옥정 작가가 그의 대표작 ‘둔황의 사랑’을 낭독하고 있다. 윤후명(둘째줄 다섯번째)작가와 제자들이 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백상경제연구원


“독자들이 한국소설을 안 읽는 게 아니라 못 읽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소설은 한글이 아니에요. (독자들이) 알아먹지 못하게 소설을 쓰는 우리 잘못입니다. 그래서 소설이 망해가는 도중에 있어요. 이제 독자가 깔보기 직전이예요.”

지난 22일 이태원에 위치한 인문학 카페 ‘소설앤소셜’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념회에서 윤후명 작가가 제자들에게 일갈했다. 이날 행사는 그의 제자들 중 등단한 문인의 모임인 ‘문학 비단길’ 회원들이 스승의 등단 50주년을 축하하고 최근 소설 전집의 완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했다. 행사는 제자들이 작가의 대표작을 선정해 낭독하면서 궁금한 점을 질문하면 윤 작가가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윤 작가는 이날 한국소설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작가의 역할과 정부정책의 혁신을 주문했다.

그는 “요즈음 세대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아니 한글도 아닌 것을 써 놓고 읽으라고 하니 어떻게 한국소설을 읽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작가들이 다시 한글의 본질을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요즈음 한글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서로 통하지 않아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세종의 시대와 비슷하다”면서 “일례로 버스에 적힌 ‘도중하차전도무효’라는 한글 경고문은 나이 든 사람들이야 ‘중간에 내리면 다시 타고 갈 수 없다’고 추정할 수 있겠지만, 젊은 세대는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헐’하고 말 것이다. 한글을 쓰는 수준이 이러한데 작가는 얼마나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인가. 한 나라의 문화가 바로 서려면 말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설에 무관심한 요즈음 세태에 대한 우려도 내비쳤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에 멋진 대사가 나오면 시청자들은 배우가 하는 말이라고 믿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가 누구인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서 “가령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오스카상을 받으러 연단에 올라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써 준 아무개 작가에게 감사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 이런 세상에서는 작가가 설 길이 없고, 문학이 설 길이 없다. 매우 문학적이지 않은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시와 소설이 다른 분야처럼 구분된 우리 문학계의 현실에 대한 우려도 쏟아냈다. “시인과 소설가가 구분되어 있는 나라는 아마 몇 안됩니다. 시인이 곧 소설가이지요. 한 가지만 한다면 그것은 절름발이나 다름없어요. 하지만 처음 등단했을 때 ‘소설을 쓰려면 시를 포기하라’는 심사위원의 말을 듣고 살아남기 위해 이름까지 바꾸고 소설만 쓰면서 20년을 기다렸어요. 이제야 할 수 있겠다 싶어서 ‘한국어의 시간’ 등에 당당하게 시적인 표현을 쓰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소설이 필요한 시점인데 우리 소설은 아직도 메시지를 담거나 주의주장을 펼치는 데 너무 집중하고 있어요. 80~90년대에는 군부독재, 이산가족, 노사갈등, 빈부격차 등 복잡한 사건들이 많아 메시지가 강했지만, 이제는 묘사에 충실하거나 대단히 회화적인 그런 좀 더 새로운 소설이 나와야 할 때인데 걱정입니다.”

작가로서 그리고 문단에 대한 비판과 자기 반성에 이어 정부 정책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영화계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문학이 있어야 영화가 있고 연극도 있어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전업작가들이 굶고 있는데 무슨 좋은 작품이 나오겠어요. 우리 때만 해도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지만 요즈음은 찾기 어려워요. 어문정책을 새로 세워야 합니다. 문학을 지원하는 정부 예산이 20억 정도에 불과한데 어떻게 우리나라 문화가 풍성해질 수 있겠어요.”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서 소설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발랄하고 재미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제자의 질문에 그는 단호히 그래서는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문학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가볍고 재미있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독자의 수준에 맞추다가는 한정 없이 수준이 낮아져요. 많이 팔리는 작품이 최고의 작품인 것처럼 보도하는 언론에도 문제가 있어요.

고사 직전에서 살아날 가능성은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윤 작가는 “희망을 말해야 하지만 사실, 비관적이다”라고 우려하면서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른다. 기계가 소설을 쓰는 시대에 인간의 소설쓰기가 과연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국소설의 미래가 이제 걸음 마단계”라고 진단하는 그는 이어 “요즈음 강연을 가 보면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학자, 기업 CEO 등을 만나보면 ‘어떻게 소설가가 될 수 있냐’고 묻곤 한다. 소설이 그렇게 매력적인 것”이라면서 웃었다./글·사진=장선화 백상경제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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