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재개 방침과 에너지 전환(탈원전)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정부가 내놓은 ‘탈원전 로드맵’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발전설비 용량이 22.5GW(24기)에 달하는 원전은 2038년 16.4GW(14기)로 줄어든다. 신고리 5·6호기를 비롯해 건설 중인 4기의 원전이 모두 완공되는 시점인 2022년 28.9GW(28기)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감축되는 셈이다. 탈원전 로드맵에 따라 취소되는 원전의 발전설비 용량은 모두 22GW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발전설비(105.9GW)의 20.7%에 달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특히 월성 1호기를 조기 폐로(廢爐)하겠다는 강수도 뒀다. 1982년 11월 발전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국내 최초의 가압중수로형 원전이다. 2012년 설계수명(30년)이 종료됐지만 3년간의 찬반 논란 끝에 2015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연장 운전을 결정했다. 이후 일부 주민과 시민단체가 수명연장 허가 무효처분확인 소송을 냈고 법원은 지난 2월 주민 손을 들어줬다. 원안위의 항소로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월성 1호기는 전력수급 안정성 등을 고려해 조기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9월 공개된 제8차 전력수급계획 초안은 2030년까지 전력수요가 당초 대비 12.7GW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경수로 대비 사용후핵연료를 7배가량 많이 만들어내는 중수로가 4기 몰려 있는 월성 원전의 경우 2019년 임시저장 시설이 포화 상태에 다다른다. 원안위가 항소를 취하할 경우 1심에 따라 당장 가동을 멈출 수 있다.
정부는 공론화위의 정책 권고안에 따랐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번 공론화 과정을 통해 우리가 가야 할 탈원전, 탈석탄, 신재생 확대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의미 있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정과제를 통해 구체화했던 탈원전 공약을 공론화위 결론에 따라 확정한 것”이라며 “권고안 이후 4일 만에 뚝딱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공론화위의 정책 권고안이 앞뒤가 안 맞는다는 점이다. 공론화위 시민참여단 59.5%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선택했다. 하지만 공론화위는 53.2%가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답변을 내놨다며 정부에 탈원전 유지를 권고했다.
일각에서는 탈원전정책에 대한 평가를 물은 공론조사 결과가 신뢰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원전 반대가 53.2%지만 원전 지지는 유지 35.5%와 확대 9.7%를 포함하면 45.2%로 격차가 8%포인트에 불과하다”며 “원전정책 차원에서 공론조사를 하려면 타 전원과의 비교평가가 반드시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아 다소 혼란스러운 결과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원전정책에 대한 설문의 경우 양자택일의 신고리 5·6 찬반 문항과 달리 △원전 축소 △원전 유지 △원전 확대 △잘 모르겠음 등 4개 항목 중 하나를 택하는 문항이다. 찬성과 반대, 혹은 응답거절로 구분된 기존 여론조사의 질문에 비해 확연한 찬반을 가르기가 쉽지 않다. 이윤석 공론화위 대변인(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은 “원전 정책에 대해 묻는 기존 여론조사의 질문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탈원전 로드맵을 연말 제8차 전력수급계획과 내년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탈원전 비용은 국회 심의를 거쳐 기금 등 남는 세금을 활용한다. 다만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일시 중단으로 인한 비용은 한국수력원자력이 보상하기로 선을 그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내년 6월까지 규모 7.0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국내 모든 원전의 내진 설계를 보강할 예정이다. 원전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사우디아라비아·체코·영국 등과 정상회담, 장관급 양자회담도 추진하기로 했다. /세종 김상훈기자 이태규·박형윤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