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다가 전사한 호국영웅 고(故) 김창헌 일병의 유해가 66년 만에 아내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6·25전쟁 당시 노전평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 일병의 부인 황용녀씨의 자택을 방문해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가졌다고 24일 밝혔다.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 장관 위로패, 유해 수습 때 관을 덮은 태극기, 함께 발굴된 인식표·도장 등의 유품이 유족에게 전달됐다.
김 일병은 1924년 경기 안성시 삼죽면 용월리에서 4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나 삼죽면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1944년 4월 황씨와 결혼했다. 그는 1951년 1월 자원입대해 국군 8사단 10연대에 배치됐고 같은 해 8월25일 2차 노전평 전투 중 적의 총탄에 2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1951년 7월10일 제1차 휴전회담이 열렸으나 공산군 측의 무성의로 회담이 지연되자 유엔군 사령부는 공산군 측을 회담장으로 불러내 회담을 진척시키기 위한 압력수단으로 제한된 공격작전을 계속하는 상황이었다.
그의 유해는 지난 7월5일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 무명 900고지 일대에서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와 한자로 이름이 새겨진 도장, 버클 등의 유품과 함께 발굴됐다. 그러나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는 끝자리가 불명확해 맨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웠고 함께 발굴된 도장도 60여년이 지나 글자가 불명확해 병적자료 분석이 어려웠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식별이 가능한 앞 두 자리 같은 이름을 가진 전사자들을 일일이 확인해 김 일병을 찾아냈고 김 일병의 딸 인석(66)씨가 2008년 국군수도병원을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뒀다는 것을 파악한 후 추가 채취까지 해 최종 확인을 했다.
김 일병의 아내 황씨는 “남편이 6·25전쟁으로 자원입대했을 때 임신 중이었고 남편도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서 “남편은 복중의 아이를 남자로 생각해 ‘김인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전쟁터로 떠났고 10일 후 딸이 태어났다”고 말했다. 황 씨는 “남편이 소중히 지어준 아이의 이름을 바꿀 수 없어 아들 이름이지만 그대로 쓰기로 했다”면서 “남편이 떠난 후 보따리 장사와 노점상을 하며 홀로 딸을 키웠는데 이제라도 남편의 유해를 찾아 만나볼 수 있어 너무나 감격스럽다”고 말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신원이 확인된 김 일병의 유해는 유가족들과의 협의를 거쳐 향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번 6·25 전사자 신원 확인은 2000년 유해 발굴 첫 삽을 뜬 후 125번째이며 올해는 일곱 번째 귀환 행사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