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는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향후 테이퍼링 계획을 밝혔다. 제로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오는 12월 끝나는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일단 내년 9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또 필요할 경우 추가 연장까지 고려하겠다고 덧붙여 금리 인상 기조 전환 시점도 못 박지 않았다. 자산매입 규모는 매월 600억유로에서 300억유로로 줄어들긴 했지만 시장의 기대보다 완만한 긴축을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있지만 물가를 상승시키기 위해 유로존은 여전히 충분한 통화 자극이 필요하다”며 “상당한 규모의 회사채를 계속 매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ECB가 이 같은 결정은 내린 것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경기회복 분위기가 완연하긴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에 미치지 못해 섣불리 긴축 속도를 높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드라기 총재는 “근원 인플레이션(식품·에너지 등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한 물가상승률)이 지속 가능한 상승 추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드라기 총재는 “세계 경제 회복세가 유로존의 수출을 지지할 것”이라며 경제상황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ECB는 이날 통화정책회의에 앞서 비둘기파와 매파 간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으며 만장일치의 결정을 내리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드라기 총재와 이그나지오 비스코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 등이 분리독립 문제로 시끄러운 스페인·이탈리아의 정치적 불확실성과 기대에 못 미치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테이퍼링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펼쳐 이번 결정을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ECB의 테이퍼링 속도 조절에 화답해 유럽 주식시장은 이날 ‘안도 랠리’를 펼쳤다. 회의 결과가 전해진 뒤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독일 등 유럽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상승했다. 금리 인상을 시작한 미국과 유럽과의 금리 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장중 유로화 가치는 0.5%가량 떨어졌다.
카스텐 브제스키 ING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ECB의 출구전략을 “매우 신사적”이라고 평가하며 “ECB가 발표한 양적 완화 재조정은 ECB가 출구를 향해 유로화 가치나 채권 수익률 상승 없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가고 싶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