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명동 지하상가 출입구에 모 백화점의 다국어 광고판이 걸려 있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완화 기대감이 커지면서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사실상 중단됐던 중국 마케팅을 다시 재개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대한항공은 38개 한중 노선 중 8개 노선, 79편을 줄였다. 아시아나항공도 총 90편의 운항을 축소했다. 운항 항공기종도 소형으로 교체했다. 제주항공 등 저비용항공사(LCC)들은 부정기편을 일본·동남아·러시아 등으로 돌렸다. 해당 항공사들은 지금까지도 한중 노선을 축소 운항 중이다. 영업이익은 평균 15~20% 정도 줄었다.
여행·관광·유통·면세업계도 타격이 이어졌다. 이달 초 유통업계는 중국 국경절 연휴 기간 면세점·백화점 등이 관련 마케팅을 지레 포기하면서 예년 같으면 7,000억원 이상에 달했을 특수를 허공에 날려야 했다. 하지만 최근 곳곳에서 한중관계 해빙 조짐이 확인되면서 국내 업체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길상항공만으로 단정하기 힘들지만 향후 중국 항공사 운항이 늘어나면 정부의 시장 정상화 사인으로 볼 수 있다”며 “다시 한중 노선 적극 공략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항공사들은 아직은 한중 노선과 관련, “바뀐 분위기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잔뜩 촉각을 세우고 관련 시장을 점검하고 있는 분위기다.
유통업체들은 대(對)중국 마케팅에 재시동을 걸고 있다. 화장품·면세점·백화점·대형마트·식품업체·홈쇼핑업체 등은 11일로 예정된 광군제 마케팅 전략을 짜고 있다. 2009년 첫선을 보인 광군제는 이미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쇼핑 명절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광군제 행사에서 한국 업체들이 큰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지난해 ‘드로잉 아이 브로’와 ‘마스크시트’로 대박을 터트린 아모레퍼시픽(090430)은 올해 한방 헤어케어 브랜드인 ‘려’를 중심으로 중국 현지 고객 대상 프로모션을 준비 중이다. 인기제품 려 함빛모라인 대용량 제품을 특별 제작해 온라인 몰에서만 한정 판매하고 동양화가인 홍지윤 작가와 협업해 소용량 제품으로 구성된 기획세트도 출시할 계획이다.
면세업계의 발걸음도 빨라지는 분위기다. 롯데면세점은 최근 광군제 위시리스트를 작성해 댓글이 많이 달릴수록 적립금을 주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신라면세점도 다음달 10일까지 이벤트 기간 중 매일 60달러의 적립금을 증정하는 행사를 선보였다. 신세계면세점도 광군제 마케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커머스 업체도 광군제 마케팅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이베이코리아가 운영하는 ‘G마켓 글로벌샵’은 다음달 1일부터 12일까지 100여개의 핫딜 상품과 할인쿠폰, 배송비 할인 등 혜택을 제공한다. 특히 올해는 방탄소년단·워너원 등의 인기로 K팝 상품의 매출 호조를 기대하고 있다. SK플래닛의 11번가 역시 지난달 출범한 ‘글로벌 11번가’를 통해 다음달부터 국내에서 진행하는 ‘십일절’ 행사와 광군제 마케팅을 엮을 채비를 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도 현대홈쇼핑 현대H몰 글로벌관을 통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특가 행사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업계인 CJ제일제당도 뷰티 건강기능식품인 이너비 특별판 물량을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준비하고 현재 사전 예약을 받고 있다.
자동차 업계도 비슷하다. 한천수 기아차(000270) 재경본부장은 27일 3·4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최근 중국 판매 현장에서 반한감정이 소폭 희석되는 모습”이라며 “대리점 방문객 수도 사드 초기보다 개선되는 양상”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기아차는 9월 들어 중국에서 판매량 감소폭이 전보다 완화됐다. 9월 중국 판매량은 4만3대로 월별 기준으로 올해 최고치다. 현대차(005380)의 3·4분기 중국 판매량은 18만8,000대로 전년 대비 26.6% 감소했지만 2·4분기 감소량(64.2%)에 비하면 양호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최근 이 같은 움직임을 체감하고 있다. 최근 중국 내 투자 프로젝트 논의를 위해 중국을 방문한 이규엽 대성자산운용사 대표는 “사드 이슈가 불거지고 나서는 중국 정부에서 비자조차 발급해주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얼마 전 중국에서 현지 고위급 관계자 10여명과 2시간 반 동안 회의하면서 사드 이슈는 한번도 언급이 안 됐고 매우 적극적인 태도였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한중관계가 해빙 무드에 접어들면서 국내 게임사들의 중국 진출을 가로막았던 ‘판호’ 문제 또한 곧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게임업체들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으로 불거진 한중 간 갈등으로 3월 이후 중국국가신문광전총국으로부터 판호를 받지 못해 중국 시장에서 새로운 게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강도원·윤경환·양사록기자 theo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