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호 KAIST 교수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혁신을 위한 튼튼한 펀더멘털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제공=KAIST.
“진정한 혁신은 할 일을 꾸준히 깊게 하는 데서 나옵니다. 제가 촬영한 개기일식 사진이 쟁쟁한 프로들을 제치고 미 항공우주국(NASA)부터 ‘오늘의 천체사진’으로 선정된 것도 20년간 고민하고 시행착오한 결과지요.”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로 유명한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로봇연구소장은 서울의 한 식당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이명박정부 때 녹색, 박근혜정부 때 창조를 안 붙이면 얘기가 안 됐는데 지난해 ‘알파고’ 쇼크 이후에는 인공지능(AI)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레이 커즈와일이 오는 2040년 인공지능이 인간을 앞서는 ‘싱귤래러티’를 얘기하지만 예측이 힘들어 현실을 보고 기초부터 다시 혁신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국적기업을 보면 오래 쌓아온 실력이 있어 의미 있는 혁신을 이루는데 우리 기업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 교수는 “정부가 유행에 휩쓸려왔다”고 진단한 뒤 “AI도 투자하려면 20년 전부터 했어야 했고 불과 3년 전에는 3D프린터를 안 하면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다”며 “요즘은 드론·자율주행차·AI에서 기업들이 많은 투자를 하고 혁신하는데 인력양성은 좋지만 국가 어젠다로 삼기에는 뒷북을 친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정부의 국가 연구개발(R&D) 자금 지원 시스템과 현장의 연구행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교수들이 무척 바쁜데 실력은 늘지 않아요.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니까 제너럴리스트가 돼요. 미국 교수들은 안 바빠요. 60세가 되면 축적돼 후광이 비치죠.” 그는 이어 “교수들이 AI에 우르르 몰려가 신청해 돈을 따내는데 20~30개 프로젝트나 제안하며 길에서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꾸준히 공부하지 않는 이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정부 주제와 관계없이 위원회나 학회 심사도 나가지 않고 로비도 없이 옛날에 한 것을 계속 붙여 연구해왔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교수·연구원들에게 “10년 전에 연구했는데 또 하느냐. 중복연구는 안 된다”고 하는데 결국 현장에서는 다른 연구를 한다고 가짓수만 붙여 제안하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과제를 나열하지만 말고 집요하게 장기간 연구해 실력과 펀더멘털을 갖춰야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오 교수는 “정부의 R&D 선발·평가 시스템이 객관식 위주의 수능평가처럼 100% 정량평가로 공정경쟁을 한다지만 사회를 정체시킨다”며 “창의적인 것을 하려면 ‘어디에 쓸 거냐, 서양 사람이 한 것을 해야 성공하지, 5년 뒤 시장의 파급효과는 뭐냐’고 하는데 길게 봐야 한다. 드론도 10년 전에 제안했으면 떨어졌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