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자 방침에는 도광양회 외에 능력을 키워도 대외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잘 숨기라는 ‘선우장졸(善于藏拙)’도 있고 결코 앞에 나서 우두머리가 되지 말라는 ‘결부당두(決不當頭)’도 나온다. 이런 구절을 보면 노자가 사람이 가져야 할 보물로 지목한 것 중 하나가 떠오른다. 앞에 나서려고 하지 말라는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이 그것이다. 동양 철학의 개념으로 말한다면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라는 ‘유위(有爲)’보다 가능한 한 일을 벌이지도 만들지도 말라는 ‘무위(無爲)’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시 주석의 연설을 보면 노자의 불감위천하선에 대응하는 도광양회의 무위가 아니라 중국이 현대화 과정에서 기른 힘을 적극적으로 떨치는 유위의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이 덩샤오핑 시대와 비교해 현격하게 상승한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자신감의 표방이자 외교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국제 관계에서 그대로 추진된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국제사회는 새로운 상황을 맞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중국은 국제사회가 직면한 갈등 상황을 중재하는 조정자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익을 주장하며 새로운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전국시대의 제후들이 생존을 위해 전쟁을 선제적으로 벌였지만 안정이 아니라 더 큰 고통을 겪는 시대를 치유하기 위해 불감위천하선의 주장을 내놓았다. 앞에 서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지만 불안에 떨고 고통의 늪을 벗어날 수 없으므로 현실과 반대 방향으로 살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불감위천하선의 20세기 버전이 바로 도광양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불감위천하선에서 ‘불(不)’자를 떼어내고 ‘감위천하선’의 유위를 하게 된다면 노자가 말한 갈등과 분쟁의 악순환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갈등과 분쟁의 악순환을 막을 제동 장치가 없다면 중국을 이웃한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가 중국발 위기감의 고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내부를 향해 “문화 자신감을 확고히 하자”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외부를 향해 자문화 중심주의를 넘어 중국발 우려를 씻어낼 수 있는 합리적이며 보편적인 주장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 상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