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판값' 이어 이번엔 '인상폭'...철강·조선 2R

6개월 실랑이 끝 '후판 인상' 합의했지만 얼마나 올릴지 또 줄다리기 예고



수개월째 이어진 철강 업계와 조선 업계의 후판 가격 협상 끝에 조선 업계가 철강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전 세계적으로 후판 가격이 오르는 추세인데다 납기와 품질을 모두 맞출 수 있는 공급처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양측이 인상이라는 원칙에 합의함에 따라 앞으로는 인상 폭에 대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9일 조선·철강 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조선·철강사들이 올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에서 단가를 인상하는 방향에 합의했다. 하반기 가격 협상에 돌입한 지 6개월 만이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후판가 인상 자체에 대해서는 컨센선스를 어느 정도 이룬 상황”이라며 “지금은 인상가격을 정하기 위한 실무교섭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조선사는 그간 후판 가격 인상 움직임에 꾸준히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선가가 바닥을 기어 배를 만들어도 남는 게 변변찮은 상황에서 선박 건조비용 중 20% 가까이 차지하는 후판 가격마저 오른다면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조선사가 주로 수주하는 초대형유조선(VLCC) 선가는 8,000만달러(약 900억원) 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사가 선박을 건조하는 경우 척당 영업이익률은 1~2% 수준으로 VLCC 한 척을 건조해 조선사에 남는 돈을 단순계산하면 9억~18억원 정도다.


문제는 후판 가격이 오르면 배를 지어도 이윤이 안 남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VLCC 한 척을 만드는 데 투입되는 후판은 3만톤 정도로 톤당 5만원씩만 올라도 15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최근 “수주 감소로 불황을 겪고 있는 조선 업계의 상황을 도외시한 채 가격을 올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철강 업계를 비난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그러나 철강 업계의 뜻은 단호하다. 올해 최대 실적을 기대할 정도로 사업 전반에서 흑자를 보고 있지만 후판사업만큼은 여전히 고전 중이라는 것이다. 철광석·유연탄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열연·냉연 등 주요 철강제품가에는 이를 반영해왔다. 하지만 후판 가격은 충분히 올리지 못했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조선사 상황이 워낙 안 좋다 보니 2~3년간 후판 가격 인상을 거의 못 했다”며 “이번만큼은 양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개월간의 논의 끝에 조선사는 철강사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철강사 입장이 완고해 협상 자체가 결렬되면 대안을 찾기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정해진 때 선박을 인도하는 게 생명인 조선사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자재조달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거래선을 갑자기 바꿀 경우 품질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국내 철강 업계와 조선 업계는 수십년간 거래해오면서 자재 납기와 품질에 대한 신뢰를 쌓아왔다”며 “새로운 업체와 거래를 하려다가 문제가 생기면 되레 피해가 커지니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시장에서 후판 가격이 뚜렷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국내 제품을 대체할 외국산 제품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실제 글로벌 철강재 가격의 기준이 되고 있는 중국 열연강판 가격은 9월 기준 600달러 중반으로 2016년 초 300달러 초반에서 두 배 넘게 뛰었다.

철강 업계와 조선 업계는 세부적인 가격 인상 폭을 둘러싸고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철강 업계는 “내부에서 필요로 하는 인상 폭을 달성하려면 아직 멀었다”며 조선 업계가 제시한 가격보다 톤당 5만원 이상 더 올려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선 업계 관계자는 “조선용 후판은 철강재 중에서도 대표적인 공급과잉품목”이라며 “원재료 가격 상승분 일부를 반영하더라도 가능한 인상 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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