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24시]북핵을 넘어서려면

오준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전 유엔대사
핵개발 저지 대신 핵능력 포기 초점
한미 공조 강화 핵 억지력 만들고
대화 재개해 한반도 평화 재설계를

오준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전 유엔대사
북한은 머지않아 핵·미사일 실험을 중지할 것이다. 핵 개발을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필요한 실험을 다 마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수만개의 핵무기를 보유해 전략적 핵능력을 갖고자 하는 게 아닌 한 어떤 국가도 실험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꼽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은 1998년 4~5차례의 핵실험을 한 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핵능력은 이처럼 지하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통해 핵탄두 미사일 능력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면 완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성공할지 여부는 확인할 수도 없고 확인의 의미도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다고 해서 국제법적으로 ‘핵보유국’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로서는 북의 핵능력을 전제하고 외교 안보 정책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선 북핵 문제 해결의 목표를 핵개발 저지가 아니고 핵능력 포기에 둬야 한다. 따라서 ‘동결’이나 ‘저지선(레드라인)’ 같은 개념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강력한 대북제재와 압박도 핵능력의 완성에 가까워진 북한이 추가적 실험을 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며 실험을 중지했을 때 그 효과를 발휘하도록 기다려야 한다. 즉 북한이 더 이상 핵·미사일 실험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경제발전으로 우선순위를 전환할 때, 강력한 제재로 인해 핵 포기 없이는 발전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사실 북한 수출의 70~90%가 삭감되고 대외 경제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현재의 대북제재만 가지고도 이미 그런 수준이 돼 있다.

이처럼 북한의 방향 전환을 기다리는 것은 일부에서 거론되는 무력 사용을 통한 해결보다 훨씬 안전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 우리 안보정책은 북한의 핵능력을 상쇄시키는 핵 억지력 보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핵 억지력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반드시 핵 공격을 받고 파멸할 것이라는 공식이 성립해야 가능하다. 그래야 핵무기가 있어도 사용할 수가 없다. 이론적으로는 우리도 핵 보유를 통해 억지력을 가질 수 있겠지만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켜 북핵을 포기하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핵우산을 강화해 우리가 핵을 가진 것과 같은 효과를 보도록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전술핵의 재배치나 전략적 핵우산의 강화와 같은 방안들이 거론되는데 사실 어느 것이 효과적인 방안이냐보다는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반드시 상응 조치를 한다는 미국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 보복을 위해서가 아니고 북핵을 사용 불가능한 무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미 안보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현재의 충돌 위기가 넘어가고 북에 대한 핵 억지력이 성립되면 대화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미국·중국·한국이 모두 대화를 환영할 이유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8년 동안 달성하지 못한 북한의 비핵화 복귀를 이뤄낼 수 있고, 중국은 항상 주장하던 대로 6자회담의 재개를 도모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무력 충돌의 위기를 넘기고 한반도에서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시도해볼 기회가 생긴다. 그러나 이런 국면으로 넘어가더라도 북핵 문제 해결의 가닥이 잡히지 않는 한 남북한이 대화와 협력으로 관계개선을 도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핵을 포기하는 데 꼭 필요한 강력한 대북제재를 느슨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채택된 안보리 결의 2375호는 북한과의 합작사업을 전면 금지했다. 따라서 북한과 대화를 할 수는 있겠지만 협력사업을 재개하거나 새로 시작하기는 어렵다. 10년 전 같으면 북핵 문제와는 별도로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었지만 이제는 북핵이 안보 위협일 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통일로 가기 위한 과정 자체를 막고 있는 것이다. 북핵을 넘어서야 장기적인 남북 관계를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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