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정부와 청와대에 따르면 한전KPS는 다음달 7일 웨스팅하우스와 원전해체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는다. 행사에는 정의헌 한전KPS 사장이 참석하며 웨스팅하우스 측에서는 수석부사장이 내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MOU 기한은 오는 2020년까지 3년이다.
두 회사 간 협력 내용은 △절단·제염(방사성물질 제거) 기술 이전 및 교육 △국내외 원전해체 분야 사업협력 △사용후연료 운반용기 공동 사업개발 △기타 양사가 합의한 분야 등이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의 원천기술을 가진 곳으로 원전해체 기술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
원전해체 경험이 있는 나라는 미국과 독일·일본뿐이다. 우리나라의 해체기술은 선진국 대비 70% 수준으로 원전해체에 필요한 핵심장비 11개 중 2개는 2027년에야 확보 가능하다.
지난 4월 기준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449기로 2015~2019년까지 76기, 2020년대에는 183기가 해체된다. 2030년대와 2040년대 이후에도 각각 127기와 89기가 발전을 중단할 예정이다. 해체비용만도 440조원에 달한다. 원전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해외에 진출하기에는 원전해체 관련 기술이 부족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한국전력과 웨스팅하우스 간 협력이 원전해체 시장에 본격 진출하겠다는 의미라고 보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지금은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세계 최고 원전 업체라는 점에서 한전 측이 원전해체와 관련한 유무형의 도움을 상당 부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두 회사는 국내외 원전해체 분야 및 사용후연료 운반용기 공동 사업개발을 MOU의 주요 사안으로 꼽았다. 국내외 원전해체 분야 사업에서 협력하기로 하며 국내 원전폐쇄에 웨스팅하우스가 참여하고 향후 한전의 해외진출에 웨스팅하우스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28기인 국내 원전은 2038년 14기로 줄어든다. 한전의 한 고위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와의 MOU로 원전해체 기술을 확보할 예정”이라며 “국내외에서 협력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전KPS와 웨스팅하우스가 체결할 예정인 원전해체 기술 MOU에는 수출제한 항목이 들어가 있다. 한전 입장에서는 웨스팅하우스가 제공한 정보와 기술·자재·장비를 공개하거나 양도·수출·재수출할 수 없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승인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형 원전 수출 때 미국의 동의 여부가 논란이 됐는데 원전해체 기술 분야도 우리 뜻대로만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원전해체 기술 시장을 두고 440조원에 달하는 시장이라며 장밋빛 전망을 내세웠지만 해체시장도 한계가 뚜렷한 셈이다. 원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전해체 시장이라는 게 기존 업체들이 선점하고 있어 새로 진입하는 게 만만치 않다”며 “탈원전을 주장하는 이들이 원전수출을 깎아내릴 때 미국의 동의 부분을 얘기했는데 해체시장도 (수출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탈원전을 고집하면서 수출시장이 문제가 되자 급박하게 해체시장 진출이라는 대안을 꺼낸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0일에서야 ‘글로벌 원전기술 시장과 해체 시장에 관한 비교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그러나 용역이 유찰되면서 다음달에야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당초 산업부는 해당 용역을 통해 원전 신규 건설과 해체 시장에 대한 정확한 규모를 분석할 계획이었다. 또 주요국가의 원전해체 계획과 경쟁기업, 우리 기업의 수주가능 규모를 연말까지 파악할 생각이었지만 현재로서는 기한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거꾸로 보면 원전해체 시장에 대한 세밀한 분석 없이 에너지 전환 로드맵으로 해체시장 진출계획을 공개한 셈이다. 고리 1호기 해체를 추진 중인 한국수력원자력도 해체기술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8월에 한수원이 내놓은 ‘원전해체 장비 개발 추진계획’을 보면 한수원 원전사후관리처는 11개 원전해체 필수장비 가운데 토양현장제염과 자동분류장비 개발을 2026년 상반기에야 공기업 협력사업으로 추진한다. 필수장비가 확보되는 데 10년이나 남은 셈이다.
동남권 원전해체연구소에서도 충분한 준비 없는 해체시장 진출의 문제점이 엿보인다. 산업부는 올해 말까지 원전해체연구소 부지 선정을 위한 연구용역을 추가 발주하고 내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늦어도 내년 8월까지 입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해체연구소 추진이 발표되는 바람에 지방자치단체 간 유치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부산과 울산, 경북 경주 등이 해체연구소 유치에 뛰어들었다. 일각에서는 동남권 신공항처럼 갈등의 씨앗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전직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상식적으로 봐도 해체시장이 건설시장을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지금부터 기술을 개발해 수출하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세종=김영필·박형윤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