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30일(현지시간) 성화 봉송을 위해 찾은 그리스 아테네에서 “북한이 올림픽에 참여한다는 것은 안전한 올림픽, 올림픽 정신에 맞는 평화올림픽이 된다는 것이며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 흥행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솔리더리티(Olympic Solidarity·IOC가 중계권 수익으로 선수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로 북한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북한의 참가는 남북 화해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이 10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평창올림픽을 ‘평화·문화·ICT·경제·환경 올림픽’의 인류 축제로 승화시키려는 정부의 노력이 가속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평창올림픽의 첫 번째 키워드는 단연 ‘평화’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상황에 더해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평화올림픽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더욱 커졌다.
지난 4월 강릉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대표팀의 이규선(오른쪽)과 북한의 김금복이 기념품을 교환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창=평화올림픽’ 메시지 확산=해외 유력 인사들도 ‘평창=평화올림픽’의 당위성에 차츰 공감하는 분위기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앤드루 영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미국과 중국 간 핑퐁외교, 미국과 구소련 간의 농구·아이스하키 등 스포츠 교류를 언급하며 “미국도 갈등 상황에 있던 구소련과 함께 일했다. 북한도 한국에서 열리는 평창올림픽에 참가한다면 서로 선수단·국가에 대한 존중을 형성하면서 남북 간에 평화적 관계가 만들어지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평창을 소개할 때 북한과 맞닿은 비무장지대(DMZ)에서 약 80㎞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북한 선수단 참가 등 극적인 이야깃거리들을 곁들여 성공적으로 치러낸다면 평창올림픽은 오히려 평화올림픽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다만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탓에 주변의 상황은 녹록지 않은 편이다. 9월 말 유럽 국가들의 올림픽 불참 가능성이 현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프랑스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독일 등이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한반도 위기에 우려를 드러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불참할 수도 있다’는 식의 현지 보도는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문체부와 조직위원회·강원도에 날벼락과도 같았다. 이에 노태강 문체부 2차관은 23일(현지시간) 프랑크푸르트의 독일올림픽체육연맹을 직접 찾아가 독일의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이외에도 문체부는 보도에 언급된 당국자를 일일이 만나 발언의 진위를 확인하고 대회에 대한 지지를 약속받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가 ‘평화올림픽’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태강(오른쪽)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독일올림픽체육연맹을 방문, 미하엘 페스퍼 연맹 이사회 의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문체부
◇‘동북아 평화’의 새 지평을 위해=올림픽 기간에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이른바 올림픽 휴전(Olympic truce). 기원전 9세기 그리스에서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와 그 가족, 관중의 안전을 위해 처음 제안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고대 올림픽 정신은 1972년 뮌헨 하계올림픽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테러단체의 이스라엘 선수단 살해로 크게 훼손됐다. 이후 올림픽 휴전은 개최국이 결의안을 제출하고 유엔 총회에서 의결하는 것으로 체계화됐다. 또 1998년 IOC는 모든 국가에 휴전 준수를 촉구하기도 했다.
평창올림픽은 올림픽 휴전의 의미를 확장해 평화올림픽의 새 지평을 열 큰 장이 될 수 있다. 북한의 도발이 올림픽을 계기로 진정 국면으로 돌아서고 남북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사상 첫 올림픽이었던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은 냉전체제 해체의 출발점이 된 대회로 기억되고 있다. 1980년 모스크바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이 반쪽 대회로 치러진 데 비해 서울올림픽에는 미국·구소련·중국이 모두 참가했다. 서울올림픽이 남긴 유산처럼 평창올림픽의 가장 큰 유산도 평화이기를 IOC와 국제사회는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유엔 방문 때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결의안은 11월13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될 예정이다.
마침 다음 올림픽 주자는 일본(2020년 하계)과 중국(2022년 동계).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스포츠에 아시아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했다. 올림픽을 매개로 한 자연스러운 협력은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동북아 경제공동체·다자안보협력체를 실현할 지렛대로 유용할 수 있는 것을 IOC에서 공인해준 셈이다.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평창의 밤’ 행사에서 평화올림픽 구상을 밝히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북한 선수단 참가 유도, 무리수는 경계해야=지금으로서는 북한 선수단의 참가가 평화올림픽 시나리오의 필수조건이다. 북한의 출전은 얼마 전만 해도 그야말로 안갯속이었다가 9월 말 피겨 페어의 렴대옥·김주식 조가 국제대회에서 평창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면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북한이 모든 종목에서 자력으로 출전권을 아예 얻지 못할 경우 IOC와 각 경기연맹을 통해 와일드카드(출전자격 특별부여)를 주는 방안도 추진할 수 있지만 북한이 이 같은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아무래도 불투명해 보였다. 다행히 자력으로 출전 가능한 종목이 생기면서 북한으로서는 체면이 깎일 필요없이 언제든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바흐 위원장은 24일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채널로 노력하고 있다. 북한에 참가 기회를 주기 위해 기술적인 조치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참가를 유도하기 위한 독자적인 노력도 좋지만 가급적이면 IOC를 통로로 하는 편이 바람직해 보인다. 북한 선수단 참가에 애걸복걸하는 모양새는 북한에 오판의 여지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여름에 있었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언급은 우리 선수들이 느낄 박탈감을 돌보지 않은 채 나온 것이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단일팀을 구성하려면 우리 대표팀 선수 중 일부를 제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일팀 구성이나 남북 선수단 동시 입장, 북한 응원단 방문 등은 우선 북한의 올림픽 참가가 가시화되고 난 뒤 논의해도 늦지 않다. 참가가 결정된다면 체재비 등의 편의 제공에 있어 퍼주기 논란을 경계하는 것도 유념할 일이다. 무엇보다 북한을 포함해 어떤 나라든지 오고 싶어 하는 올림픽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일 것이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평창올림픽 피겨 페어 종목 출전권을 따낸 렴대옥·김주식 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