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의사봉 빼앗은 위원장, 책 상 두드리며 의결한 의장

일방통행한 거래소 노사
박성규 증권부 기자

“주주총회 소집 절차에 하자가 있다.(이동기 한국거래소 노조 위원장)” “주주총회는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안상환 거래소 권한직무대행 겸 주총 의장)”

31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21층 회의실. 정지원 이사장 선임 안건을 놓고 팽팽하게 말싸움이 이어지던 순간 장내 흐름이 이 위원장의 돌발 행동으로 일순간 변했다. 문제 제기에도 안 의장이 안건을 상정하려고 하자 이 위원장이 안 의장의 의사봉을 빼앗았다.

안 의장으로부터 주총 절차의 적법성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듣지 못한 이 위원장은 의사봉을 가로챈 후에도 주총 절차의 문제점에 대해 자신만의 주장을 펼쳤다.

사측이 상법과 거래소 정관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상법상 주주의결권이 제대로 행사되기 위해서는 안건을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하는데 이날 상정된 안건인 이사장, 사외이사, 코스닥시장위원회 외부기관 추천위원 선임의 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거래소 정관상 우리사주조합원은 서면으로 찬반 의견을 낼 수 있는데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제대로 된 의결권 행사에 방해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안 의장 역시 이 위원장의 주장과는 상관없이 안건을 상정하고 의사봉 대신 손으로 탁자를 치며 안건을 통과시켰다.

주주 자격으로 주총에 참여한 우리사주조합원의 의견은 안건 통과의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의장은 “조합원을 제외하고 반대하는 분은 안 계시죠?”라는 말과 함께 안건을 모두 통과시켰다. 전체 주식 지분 중 0.075%에 불과한 조합원의 의견은 묵살되고 말았다. 답답함은 이해하지만 절차를 문제 삼으며 주총에 참여한 위원장이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의장의 의사봉을 가로챈 행동 역시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주총에 문제가 있다면 어느 주주의 말처럼 사후에 주총결의 무효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언론에 사상 처음으로 공개된 거래소 주총은 의사봉 없이 원안을 가결 시킨 주총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절차상의 오점뿐 아니라 일방통행식 진행으로 노사 간 상흔도 깊어졌다.

지난 8월 이사장 후보 공개모집으로 시작된 이사장 선임 절차는 이날 주총으로 마무리됐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거래소에 거는 기대 역시 주총으로 물거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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