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사의 하이라이트는 정현호 전 미래전략실 인사팀장의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장으로의 복귀다. 정 사장이 현업은 물론 재무·감사·인사 등 지원 업무까지 두루 경험한 경영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협력이 원활하지 않은 전자계열사간 시너지를 높이고 미래 신규 사업에 속도를 내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재계 일각에서는 지난 3월 해체됐던 그룹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부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재용(JY) 부회장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정 사장의 입성으로 JY 체제 강화는 물론 조직 개편 작업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고위임원은 “JY 체제의 색깔이 사장단 인사를 통해 확실히 드러났다”며 “‘젊은 피’ 수혈로 조직에 긴장과 활기를 불어넣는 한편 신상필벌 원칙도 재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사장 승진자 7명 전원 50대, 반도체 승진도 최대=세대 간 바통 터치는 이번에도 여실히 증명됐다. 이번 사장 승진자의 평균 나이는 55.9세에 불과하다. 60대는 모조리 갈린 셈. 4차 산업혁명기를 맞은 엄중한 상황에서 ‘젊은 피’로 하여금 한 차원 높은 도전과 혁신을 추진하게 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유례없는 초호황에 실적 경신을 이어가고 있는 반도체 부문의 대규모 승진도 눈에 띈다. 사상 처음으로 4명의 사장 승진자를 배출했다. 진교영 메모리 사업부장, 강인엽 시스템LSI 사업부장, 정은승 파운드리 사업부장, 황득규 중국 삼성 사장이 그 주인공들. 메모리·비메모리를 불문하고 모두 부사장들을 올려 ‘성과 있는 곳에 승진 있다’는 원칙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팀 백스터 부사장은 외국인으로서 사상 처음으로 사장으로 승진했다. 미국에서 TV 등 프리미엄 가전 부문에서 성과를 낸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상훈 사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올라가며 공석이 된 경영지원실장(CFO)에는 노희찬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이 임명돼 삼성전자의 살림을 꾸리게 됐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깜짝’ 발탁은 아니지만 뛰어난 실적을 거둔 곳에는 베테랑들을 모두 승진시켰다”고 촌평했다.
◇JY의 ‘복심’ 정현호의 컴백=이번 인사에서는 특히 정현호 사장의 복귀에 관심이 집중된다. 그간 정 사장은 JY가 부재한 상황에서 복심 역할을 해줄 ‘영순위’ 인물로 거론돼왔다. 그가 맡게 되는 조직은 신설되는 ‘사업지원 TF’. 전기·SDI·SDS·디스플레이 등 전자 계열사 간에 투자 업무 조정 등을 맡게 된다. 이전 미전실에서 담당했던 업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TF가 컨트롤타워로서 기능을 대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대관 및 지배구조 관련 업무가 빠졌다는 것과 그룹 전체가 아닌 전자 계열사를 관할한다는 점이다. 다만 삼성은 이런 해석에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상훈 사장이 이사회 의장, 정 사장이 TF 장으로 JY 체제의 신구(新舊) 라인업이 완성된 것 아니겠느냐”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 사장이 앞으로 강화될 이사회 경영의 초반 틀을 잡아주고 정 사장이 제도권 내로 들어와 컨트롤타워 수장으로서 전략 기획 업무를 담당하게 되는 셈”이라고 해석했다.
◇‘2회장-3부회장’ 체제로 재편…후속 인사 속도 낼 듯=자진사퇴했던 거물들을 예우한 점도 이번 인사의 특징으로 꼽힌다. 권오현 부회장은 회장으로,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은 부회장으로 올려 경영자문 등을 부탁했다는 설명이다. 권 회장은 종합기술원에서 기술자문과 후진양성에, 윤 부회장은 부처 장관과의 회동 등에 삼성전자를 대표해 소통창구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신 부회장은 인재 발굴과 양성에 방점이 찍혔다.
이날 삼성전자는 계열사인 벤처투자(전용배 삼성화재 부사장), SDS(홍원표 사장), 디스플레이(이동훈 부사장)의 사장 인사도 발표했다. 후속 인사가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속전속결 식으로 인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총수 부재 등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조직을 빨리 안착시키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