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스테이지] 국·양악의 앙상블…"우리 잘 어울리죠"

<가을에 '썸'타는 국악과 서양음악>
두 명인의 삶 재즈로 풀어낸 '적로'
국립국악관현악단 다섯판소리 등
새로운 퓨전국악 공연 잇따라 선봬
접목 절대 쉽지 않지만 실험 꾸준
'보존과 보전'사이 여전한 갈등 속
"표준화된 기준은 잡아야" 지적도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이 황금어장이듯, 인간 세상에서도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가 만날 때 창조적인 발전이 생겨난다. 이러한 시류에 맞춰서일까. 국악과 서양음악이 만난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 잇따라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두 국악 명인의 삶을 재즈와 함께 풀어낸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음악극 ‘적로’, 임헌정 지휘자와의 협연에 이어 테너, 소프라노와 함께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 다섯판소리’, 탈춤과 드라마의 결합을 시도한 정동극장의 창작탈춤극 ‘동동’ 등이 얼마 남지 않은 2017년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관현악부터 재즈, 탈춤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융합 시도

3일부터 24일까지 무대에 오르는 ‘적로’는 일제강점기인 1941년을 배경으로 대금 명인 박종기(1879~1941)와 김계선(1891~1943) 두 실존인물의 삶과 예술혼을 그리는 작품이다. 배삼식 작가가 극작을, 최우정 작곡가가 음악을, 정영두 안무가가 연출을 맡았다. 이 작품에서 최우정 작곡가는 전통음악뿐 아니라 스윙재즈 등 대중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한 자리에서 선보인다. 그는 “장르적 편견 없이 음의 고저장단, 속도, 사용하는 음 등을 중점으로 국악을 바라보면 재즈·바로크 음악과 만나는 지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17일 국립극장에서는 ‘국립국악관현악단 다섯 판소리’가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임헌정 지휘자와의 협연에 이은 행보다. 이미 잘 알려진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다섯 바탕을 다양한 개성을 가진 다섯 명의 작곡가 강상구·서순정·이용탁·이지수·황호준와 함께 국악관현악으로 편곡했다. 특히 드라마 ‘겨울연가’, 영화 ‘올드보이’·‘건축학개론’에 삽입한 음악을 작곡한 이지수 작곡가의 ‘적벽가’는 호른과 트롬본, 더블베이스 등 선 굵고 명확한 중저음의 악기를 함께 편성해 살아 꿈틀대는 전쟁의 웅장함을 표현했다. 이어 싱가포르에서 절찬리에 공연됐던 국립창극단의 레퍼토리 ‘트로이의 여인들’이 22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오는 9일부터 정동극장에서 초연되는 창작탈춤극 ‘동동’은 고려시대 국가적 행사 팔관회를 주제로 전통 ‘탈춤’과 드라마 구조의 결합을 시도했다. 양반탈, 각시탈 등 전통 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한 14가지 창작 탈이 등장하고 국악적 요소를 갖춘 삽입곡을 선보인다.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의 황예슬 작곡가가 음악을 맡고, 국악을 전공한 김대은 작곡가가 편곡했다. 작품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육지는 “역사적인 카니발 팔관회와 탈춤의 화려한 축제성이 잘 부합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동동’의 뒤를 이어 뮤지컬 ‘판’이 출격한다. ‘판’은 조선 팔도를 평정한 전기수 호태를 만나 이야기의 매력에 빠진 양반 달수가 낮에는 양반, 밤에는 전기수로 이중생활을 하며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쉽지 않은 실험…그럼에도 왜 이어지나

국악과 서양 음악의 접목은 절대 쉽지 않다. ‘도레미’로 대표되는 서양의 12음계와 화성전개는 국악과 서양 음악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과도 같은 존재다.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구성된 서양의 12음계와 다르게 국악의 5음계는 서양의 음 사이에 위치하게 하는 삼분손익법을 주로 사용하고, 화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임헌정 지휘자는 “서양 오케스트라에서는 분절된 음을 강조하는 반면 국악에서는 음의 떨림을 강조하는 편이라 조율이 필요하다. 거기에 템포 역시 서양음악과 국악의 차이가 심한 편이다”고 밝혔다. 노랫말을 붙이는 과정도 차이가 있다. 서양음악은 오선지를 통해 직관적으로 가사를 붙일 수 있으나, 국악은 그조차 쉽지 않다. 작곡가가 직접 소리를 내서 노래를 부르며 가사를 붙여야 해 ‘소리꾼이 오선지’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다.

보존과 보전 사이의 갈등도 현재진행형이다. 서양음악과의 접목에 대해 전통을 훼손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여러 실험을 이끄는 형님 격의 국립창극단 역시 초창기 “판소리를 훼손하고 창극을 망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반발이 휩싸였던 적이 있을 정도다. ‘적로’의 배삼식 극작가는 이런 논란에 대해 ‘당연한 과정’이라 밝혔다. 그는 “당악도 향악이 되는데 수백 년이 걸렸다”며 “더 이질적인 서양악기가 들어온 지 겨우 100년인 만큼 우리 나름대로 서양음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국립무형유산원이 주최한 2017 대한민국 무형문화재대전의 ‘이수자 합동공연: 시간의 단면’을 기획·감독한 남궁연 감독은 “일제강점기에 국악을 궤멸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던 만큼 그동안 국악계의 최대 현안은 원형을 복구하는 ‘보존’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난 70년간 ‘보존’의 성과가 있었던 만큼 ‘국악’을 통해 어떻게 부가가치를 창출할지도 생각해야 한다”며 “마치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어느 정도 이룬 이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려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이어 “보존과 개량은 찬·반의 개념이 아니라, 둘 다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남궁 감독은 ‘표준화된 기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쯤 한번 국악계의 여러 인사가 모여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며 “국악의 다양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는데 어디까지가 개량이고 어디부터가 훼손인지 기준을 정해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국악은 녹음 표준도 없고 악기 소리도 다 제각각이라 마이크를 써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에 대한 기준도 함께 정해야 한다”며 “물건을 판매하기 전 상품화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듯 국악도 외국에 알리려고 하면 표준화된 기준은 잡아야 할 것”이라 말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3일부터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펼쳐지는 음악극 ‘적로’중 일부/사진제공=서울돈화문국악당
3일부터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펼쳐지는 음악극 ‘적로’중 일부/사진제공=서울돈화문국악당
3일부터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펼쳐지는 음악극 ‘적로’중 일부/사진제공=서울돈화문국악당
3일부터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펼쳐지는 음악극 ‘적로’중 일부/사진제공=서울돈화문국악당
정동극장 ‘판’ 공연사진/사진제공=정동극장
정동극장 ‘판’ 공연사진/사진제공=정동극장
국립국악관현악단 실내악 연주 사진/사진제공=국립극장
국립국악관현악단/사진제공=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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