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황당한 설문결과로 회장 연임반대 나선 노조



친노조 정부의 등장 이후 금융노조의 기세가 등등하다. 금융노조는 사용자협의회의 빠른 복원을 요구하며 은행연합회장실을 점거하는가 하면 문을 부수는 등 폭력도 행사해 논란이 됐다. ★본지 9월28일자 1·2면 참조

KB노조는 이사회에서 결정된 윤종규 회장의 연임을 반대한다며 연일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특히 오는 20일 주주총회를 앞두고선 조직적으로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 외부에선 ‘윤 회장이 무슨 큰 결격사유가 있는 것이냐’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금융노조는 내부 이슈가 발생하면 정치권으로 쪼르르 달려가 기자회견을 여는 등 스스로 정치화되고 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이 같은 노조의 행태는 최근 들어 익숙한 풍경이 됐지만 2일 보여준 하나금융 노조의 모습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다. 하나금융 노조는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김정태 회장의 연임 반대를 공식화했다.

그러면서 근거로 설문조사 결과 조합원의 대다수가 연임을 반대한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그런데 근거로 제시된 설문조사 문항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황당해 ‘과연 설문조사가 맞느냐’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예를 들면 ‘회장의 임기는 2018년 3월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보기로 제시된 답변은 ‘①즉시 퇴임 ②임기를 보장 ③연임 필요’라는 식이다. ①, ②번 답변은 연임 반대를 전제한 것이어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결론을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문항”이라는 지적이다. 이미 답변의 방향을 정해 놓고 설문문항을 배치했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 같은 문항을 토대로 회장 연임에 대한 조합원들의 답변은 ‘즉시 퇴임해야 한다’는 답변이 52%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결과가 신뢰성을 갖기 위해서는 설문 문항이 지금보다 더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 ‘하나금융지주가 각 계열사 경영·인사 개입으로 발생한 폐해’에 대한 질문 역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지적이다. 금융지주가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를 개입으로 표현, 부정적인 의미를 곁들여 문항 자체의 객관성을 잃게 해 결론에 대한 논란을 키울 수 있고 ‘폐해’라는 단어 역시 조합원들의 객관적인 답변을 어렵게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회장의 경영실적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한 설문 문항으로 연임 반대 근거를 댄 노조의 설득력이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내부에서도 이 같은 황당한 설문문항이 어디 있느냐며 “노조가 조합원을 우습게 본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국내 은행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지배구조 리스크’를 노조 스스로 안에서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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