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 휴스턴…창단 55년 만에 월드시리즈 첫 우승

허리케인도 벼랑 끝 승부도 이겨낸 휴스턴
7차전서 다저스 5대1로 격파
MVP는 1번 타자 조지 스프링어
커쇼, 3회 구원 등판·호투했지만
이번에도 챔피언 반지 꿈 무산

휴스턴 선수들이 2일 메이저리그 우승이 확정되자 그라운드로 달려나와 환호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EPA연합뉴스


유니폼 왼쪽 가슴에 새겨진 ‘휴스턴 스트롱(Houston Strong·강한 휴스턴)’ 패치가 더욱 빛나 보였다.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2일(한국시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접수했다. 3승3패로 다저스타디움에서 치른 월드시리즈 최종 7차전에서 5대1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눌렀다. 재난의 상처가 아직 가시지 않은 휴스턴 주민들은 연고 야구팀의 믿기지 않는 정상 등극에 감격의 눈물을 보였다. 사망자 80여명과 이재민 3만여명 등 지난 8월 허리케인 ‘하비’로 인한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이 바로 휴스턴이다. 실의에 빠진 주민들을 위한 작은 응원의 의미로 붙인 휴스턴 스트롱은 오히려 휴스턴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됐다.

휴스턴은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동네북이었다. 2011년부터 4년 동안 416패를 당했다. 한 시즌 평균 104패. 2013년에는 111패를 당하기도 했다. 그해와 2014년 휴스턴 경기는 한 시청률 조사에서 0%를 찍기도 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휴스턴은 착실하게 리빌딩을 진행했다. 조지 스프링어, 알렉스 브레그먼, 카를로스 코레아 등은 모두 암흑기에 영입한 선수들이다. 2015년 부임한 AJ 힌치 감독은 그해 10년 만의 가을야구를 이끌었고 올해는 정규시즌 101승61패의 눈부신 성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휴스턴은 보스턴 레드삭스(3승1패), 뉴욕 양키스(4승3패)에 이어 다저스(4승3패)마저 격파하며 1962년 창단 후 55년 만에 처음으로 대권을 차지했다.


◇다 가진 벌랜더와 또 놓친 커쇼=다저스의 9회말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채워지자 중계 카메라는 저스틴 벌랜더(34·휴스턴)와 클레이턴 커쇼(29·다저스)의 얼굴을 차례로 비췄다. 벌랜더가 환희에 찬 표정으로 불펜에서 달려 나오는 사이 커쇼는 더그아웃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커쇼는 이날 0대5로 뒤진 3회 세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해 4이닝 무실점으로 잘 던졌지만 너무 늦었다. 월드시리즈 1차전 7이닝 1실점 이후 5차전에서 4점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4⅔이닝 6실점으로 무너졌던 그다. 손에 잡힐 듯했던 첫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는 또 미끄러져 나갔다. 최고 투수상을 세 차례나 수상한 현역 최강 커쇼는 그러나 역대 포스트시즌 성적은 7승7패 평균자책점 4.50으로 이름값에 크게 못 미친다.

2011년 사이영상 수상자인 벌랜더는 연봉 155억원에 모델 출신 배우(케이트 업튼)를 약혼녀로 둔 ‘다 가진 남자’다. 딱 하나 없는 것은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돌이켜보면 트레이드 마감시한인 8월31일의 결정은 벌랜더에게도, 휴스턴에도 ‘신의 한 수’였다. 디트로이트에서 올 시즌 성적이 기대를 밑돌았던 벌랜더는 이적 후 5경기 전승에 평균자책점 1.06을 찍었다. 포스트시즌 들어서도 4승1패 2.21로 제 몫을 다했다. 벌랜더는 우승 확정 뒤 그라운드에서 입맞춤한 업튼과 이달 중순 이탈리아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친구 사이 두 감독의 엇갈린 운명=힌치 휴스턴 감독과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오랜 친구다. 대학 때부터 알았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각각 부단장과 코치로 한솥밥을 먹었다. 그러나 이번 외나무다리 승부에서 두 친구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힌치는 ‘믿음의 야구’로 칭송되는 반면 로버츠는 ‘미련의 야구’로 비판받고 있다.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1번 타자 조지 스프링어(28)는 힌치 감독의 믿음 속에 일등공신으로 우뚝 섰다. 스프링어는 챔피언십에서 타율 0.115에 그쳤다. 월드시리즈 1차전도 4타수 4삼진. 그러나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출신의 힌치 감독은 “잘했던 날이 더 많은 선수”라며 라인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이에 보답하듯 스프링어는 2차전 연장 결승 투런포 등 7경기 타율 0.379 5홈런 7타점에 OPS(출루율+장타율) 1.471의 만화 같은 불방망이를 뿜었다. 7차전에서도 1회 2루타에 이어 2회 5대0으로 달아나는 투런포를 날렸다. 4경기 연속 홈런은 단일 월드시리즈 최초, 5홈런은 최다 홈런 타이기록이다. 스프링어는 “꿈이 이뤄졌다. 휴스턴팀과 우리의 도시, 팬들 모두가 MVP”라고 말했다.

로버츠는 이날 시작부터 흔들린 선발 다르빗슈 유를 일찍 교체하지 않은 데 대해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다. 다르빗슈는 1⅔이닝 5실점(4자책)했고 다저스는 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다저스는 8월 우승청부사로 벌랜더 대신 다르빗슈를 데려왔는데 다르빗슈는 월드시리즈에서 두 번 다 2이닝을 넘기지 못했다. 평균자책점 21.60까지 치솟았다. 다저스는 정규시즌 104승58패로 전체 최고 승률을 찍고도 29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완성하지 못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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