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KEB하나은행 본점 글로벌마켓영업부 딜러들이 분주한 모습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5영업일 연속 하락하며 1,113원80전으로 떨어졌다. /이호재기자
“묘하게 원화 강세 요인들만 넘쳐나고 있습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최근의 환율시장을 두고 이같이 분석했다. 반도체·철강 수출에 힘입어 9월 경상수지는 122억1,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했다. 3·4분기 경제성장률은 1.4%로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표를 냈다. 이에 올해 3% 성장률 달성은 기정사실화돼 있다. 이뿐 아니다. 10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생산-투자-소비 등 3대 지표도 회복됐다. 이것만 보자면 마치 한국 경제가 완연한 봄기운이 감도는 듯한 인상도 준다. 대외여건도 원화 강세를 부채질한다. 북한 리스크가 다소 진정되고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에 따른 한중 갈등이 봉합됐다. 차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 제롬 파월 연준 이사가 낙점된 것도 향후 원화 강세를 부추길 수 있는 요인이다.
이 같은 우호(?)적인 조건 탓에 원화는 상당히 가파르게 강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7일 1,130원50전에 마감했던 원·달러 환율은 1,124원60전→1,120원40전→1,114원50전→1,114원40전→1,113원80전 등으로 연일 하락했다. 이런 추세 탓에 지난 9월28일 1,148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한 달여 동안 35원이나 올랐다. 엔화는 또 어떤가. 아베 신조 총리의 엔화 약세 기조로 원·엔 환율은 3일 977원19전에 거래를 마감해 연중 최저치를 또 갈아치웠다.
원·달러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급기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나섰다. 김 경제부총리는 이날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원화 강세 속도가 조금 과도한 감이 있어서 아주 면밀하게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환율 움직임에 대해 사실상 구두개입에 나선 것이다. 부총리 구두개입 이후 역외시장에서 환율은 1,115원대로 올랐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원화의 강세를 두고 외환 당국으로서는 과거처럼 적극적인 개입도 쉽지 않다. ‘환율조작국’ 카드를 쥐고 있는 미국에 대한 눈치 탓이다. 엔저 추세는 더욱 난감하다. 재정환율인 탓에 시장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수출경쟁력 하락에 따른 기업들만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수출은 평균 4.6% 감소한다. 국제무역연구원도 원·엔 환율이 1% 떨어지면 우리나라의 대세계 수출은 0.49% 감소하고, 특히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제품들은 0.7~1% 까지 감소한다고 추정했다.
환율의 수출 효과는 중장기적으로도 나타난다는 점이 더 큰 우려 요인이다. 가뜩이나 올해 반도체와 함께 수출 호조를 이끈 석유화학업종 등의 내년 수출 전망은 흐려진 상황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환율은 시차를 갖고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경각심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달러 뿐 아니라 엔화에 대해서도 원화가 빠르게 강세를 보이다 보니 수출기업들 입장에선 채산성에 바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한 데 이어 “낮은 환율이 계속되면 장기적으로 수출물량을 늘리는 데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현호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