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인터뷰①]박정학, “6개월간 벙어리 연기 이후...새로운 깨달음이 왔다”

박정학은 전문 배우로 불린다. 40대엔 MBC TV ‘태왕사신기’의 고우충 장군을 비롯해 KBS 2TV ‘해신’·SBS TV ‘비천무’ 등에서 장군 전문 배우로 활약했고, 50대엔 악역 전문 배우로 승승장구중이다. 최근엔 SBS TV ‘조작’부터 KBS 2TV 단막극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OCN ‘블랙’까지 그를 여러 방송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박정학은 1983년에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한 35년 경력의 베테랑 배우이다. 영화 데뷔작 ‘무사’로 2002년 대종상 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속 악랄한 남편으로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배우 박정학 /사진=다인엔터테인먼트
선 굵은 연기를 도맡아서 해온 박정학의 장점은 반전 매력에 있었다.

어떤 역할을 맡겨도 제 것으로 소화하는 그를 보며 ‘당연히 연극영화과 전공일 것이다’고 짐작했다. “다들 연극영화과 나온 선배일 거라 생각하고 인사를 하더라. 실제론 공대를 나왔다”며 웃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고등학생 시절엔 태권도에 실력이 뛰어난 체육 특기생이었다.

“킥 복싱 도장에서 러브콜도 받아서 시합도 나가곤 했었다. 그러다 점점, 어릴 때부터 시작한 운동이 지겨워지고 재미 없어지더라.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본 ‘쿠쿠박사의 정원’이란 연극 한편을 보고 막연하게 끌렸다. 극단 실험극장이 올린 연극이었다. 그동안 경험한 ‘운동’의 세계와는 너무 다른 자유로운 세계란 느낌을 받고 연극을 막 하고 싶었다. ‘저기에 한번 서 보고 싶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가 반대하셨다. 그렇게 계속 운동을 하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평생 운동에 목숨을 걸고 살아갈 순 없다’는 확신이 생기자, 그는 그 길로 집을 나왔다. 대학로에서 자취를 하며 무작정 극단 문을 두드렸고 그렇게 연극 배우의 길을 걸었다. 3남 2녀중의 넷째인 그가 배우를 하겠다고 했을 때 반기는 가족은 미술을 전공한 누나 빼곤 없었다. 알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가 엄청 반대를 했다. 그 당시엔 먹고 사는 게 중요하지 않나. 연극 배우는 ‘딴따라’로 보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아버지가 젊었을 때 신파극을 연출하고 다녔다고 했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맞더라.”


배우 박정학
박정학 배우에게 생긴 또 다른 궁금증은 ‘연기를 어떻게 잘하게 됐나?’이다. 워낙 연기를 잘 해서 젊은 시절 연기에 대한 고민은 크게 하지 않았을 것처럼 보였다. 인천시립극단 소속으로 활동한 시절 그는 6개월간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고 한다. 이승규 연출을 만나면서부터 그의 연기 인생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 연출은 노부인의 방문‘을 한국적으로 번안한 ‘낸시 차여사 고향에 오다’를 선 보이며,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승규 연출을 만나기 전까진 ‘스스로 연기를 잘하는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출이 그에게 건넨 말은 ‘박정학씨 말을 하세요’ 였다.

“인천시립극단에서 4년간 주인공만 했었다. 그렇게 큰 문제가 없다고 살아왔는데, ‘말을 하세요’ 라고 하다니. 그럼 난 지금껏 뭐한거야?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충격이 너무 커서 공황상태가 왔고 매일 술만 먹었다. 고개도 못 들겠고 쥐구멍이라도 있음 찾아가고 싶은 나날이 계속됐다.”

스승은 좌절한 그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오히려 더 혹독하게 밀어붙였다. 역할을 주며 벙어리라 생각하고 표현을 해보라는 디렉팅을 내린 것. 최고의 배우들이 모인 시립극단 단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벙어리 연기를 한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했다.

“시립극단이란 곳이 들어오기 힘든 곳이다. 정말 잘하는 30명 배우들이 들어온다. 그런 곳에서 벙어리로 생각하고 표현을 하라는 지시를 하셨다. 연기를 하고 난 뒤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 경험이 있었기에 날 돌아보고 의심하게 된 것 같다. 배우로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해준 정말 감사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그는 “그 분을 안 만났으면 아마 지금도 그럴듯하게 연극 무대에서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6개월간의 방황과 고민의 시간 후, 스승이 한 말은 ‘난 정학군이 할 수 있을지 알았다’이다. 그렇게 그는 ‘배우가 말을 한다는 것, 교류한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깨우쳐갔다.

“’날 믿어준 분이시다. 강력한 걸 준 다음에 그 다음을 기다리신 분이다. 난 어떻게 보면 수혜자이다. 연기란 ‘교류’이다. 연기를 혼자하고 있는지 상대랑 함께 하고 있는지 여부가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관객으로 보는 것도 그렇고, 직접 배우로 할 때도 그렇고 서로 주고 받는게 보이면 연기가 재미있어진다. 연기를 누가 잘하느냐는 따질 수 없지만 교류가 되고 있느냐 여부는 보이는 것 같다.”

한편, 박정학은 2017년 하반기에 뮤지컬 ‘사도’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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