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5일(현지시간) 대표적 조세회피처인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의 1950∼2016년 문서가 포함된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분석 자료를 공개했다. ICIJ는 지난해 아이슬란드·파키스탄·스페인 등 각국 고위공직자들의 탈세 정황이 담긴 ‘파나마 페이퍼스’를 공개한 단체다.
이날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재산을 관리하는 랭커스터 공국은 사유 재산 1,000만파운드(약 145억 원)를 조세회피처인 케이맨제도와 버뮤다에 투자했으며 탈세·소비자 기만 논란을 받아왔던 영국 전자제품 체인 브라이트 하우스에도 일부 자금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BBC방송은 이 같은 투자가 불법은 아니라면서도 “여왕이 역외 투자를 한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해 이번 사태가 왕실의 도덕성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을 내비쳤다.
美 상무장관, 러와 거래 드러나
정치인·유명인·기업 등 대거 포함
현대상사·효성그룹도 연루 정황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인 러시아 기업과 거래한 정황이 드러나 ‘러시아 커넥션’ 논란을 부채질했다. 로스 장관이 2011년 이후 31%의 지분을 소유하던 ‘네비게이터 홀딩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 대통령의 사위인 키릴 샤말로프, 미 정부의 제재 대상인 제너디 팀첸코 등이 공동 소유자로 있는 러 에너지 기업 시부르와 원유·가스 수송 계약을 맺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러시아 사업가인 유리 밀너가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의 부동산 업체에 투자한 사실도 드러나 트럼프 행정부와 러시아 간의 연계 의혹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밖에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수석 정치자금모금책 등 각국 정상과 정치인 120여명, 가수나 배우 등 유명인과 다국적 기업 등이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대거 포함되거나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국내에서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분석 작업에 참여한 매체인 뉴스타파는 애플비 유출 문서에서 현대상사가 2006년 버뮤다에 ‘현대 예멘 LNG(액화천연가스)’라는 페이퍼 컴퍼니(서류상 기업)를 설립하고 이 회사에 예멘의 천연가스 개발 회사인 예멘 LNG 지분 5.88%를 넘긴 후 이 페이퍼 컴퍼니의 지분 48%를 한국가스공사에 판매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버뮤다에 ‘현대 예멘 LNG’를 설립한 것은 조세 회피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효성그룹도 페이퍼 컴퍼니 ‘효성 파워 홀딩스’에 2012년 2,000만달러(약 223억원)를 추가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케이맨제도에 ‘지주회사’로 설립됐던 효성파워홀딩스는 2012년과 2013년 업종이 각각 ‘변압기 제조업’과 ‘지주회사’로 변경됐으며 2015년 청산됐다. 이에 대해 효성 관계자는 “효성파워홀딩스는 해외 조세피난처 수사에서 무혐의로 통과돼 기소되지 않은 것”이라며 “중국 변압기 시장에 진출하려고 설립한 회사”라고 설명했다.
/변재현·박성호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