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TV][투데이포커스] 관치 외풍 다시 부는 우리은행

[앵커]

지난해 11월 민영화에 성공해 15년 만에 정부의 품을 떠났던 우리은행에 다시 외풍이 불어닥칠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민영화를 일궈낸 이광구 행장이 국감에서 갑작스레 터져 나온 채용비리 의혹에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하면서 차기 행장 인선이 대혼돈에 빠졌는데요.

예금보험공사가 우리은행의 차기 행장을 선임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참여를 검토하고 나서 관치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에 정훈규기자 나와있습니다.

Q. 정기자, 일단 예금보험공사는 임추위 참여가 결정된 것도 아니고 이사회에서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실제 참여 여부는 둘째 치고 지난해 민영화가 됐는데, 예보가 다시 행장 선임에 관여할 수 있는 배경은 뭡니까?

[기자]

네, 우리은행의 복잡한 민영화 구조 때문인데요.

민영화 이후 우리은행을 이끌고 있는 과점주주의 지분율은 약 30%로 예금보험공사가 가진 잔여지분 약 19%보다 높습니다.

그런데 이 과점주주라는 것은 4~6% 수준의 지분을 나눠 가진 7곳의 주주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본 겁니다.

예보가 우리은행 매각을 시도할 당시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만큼 헐값에 팔 수 없었고, 가격이 높으면 우리은행 같은 대형 은행을 사줄 만한 여력이 있는 곳이 마땅치 않은 게 문제였는데요.

이 때문에 30% 정도의 지분을 여러 곳에 쪼개 파는 과점주주 매각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흔치 않은 민영화 방식인데요. 당시에는 새로운 금융사 지배구조 모델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줄곧 물음표가 붙어왔던 것은 단일주주로는 여전히 예보가 압도적인 최대주주로 남는데, 경영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예보는 지난 1월 우리은행의 민영화 초대 행장 선임 때 약 19%의 지분을 가지고도 과점주주에 의한 자율경영을 보장하는 의미로 임추위 멤버로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부기관인 예보가 다시 우리은행 임추위 참여를 검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제든 다시 관치가 되살아 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인데요.

실제 참여 여부를 떠나서 민영화라는 말 자체가 우스운 꼴이 된 겁니다.

[앵커]

Q. 지난해 8월 매각 공고를 냈을 때도 정부가 과점주주들에 의한 자율경영 약속을 내걸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요. 관치 논란이 예상됨에도 예보가 임추위 참여를 검토하는 이유는 뭡니까?

[기자]

네, 예보의 한 관계자는 “우리은행 임추위에 늘 참여해 오다 민영화 이후 한 차례만 빠졌고, 이번에 참여할지 말지 검토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는데요.

사실 속으로는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예보는 우리은행 임추위 참여 문제로 관치와 책임 논란 사이에 갇혀버린 형국인데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민영화 전후에는 예보가 잔여지분 약 19%를 통해 우리은행에 대한 관치를 계속할 것이라는 의심을 받아왔습니다.

이 때문에 과점주주들의 자율경영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모습을 보여야 했던 것인데요.

반대로 완전히 손을 떼고 있자니, 우리은행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단일 최대주주라는 이유로 책임론이 불거져 입장이 곤란한 겁니다.

특히 최근 우리은행은 자체 채용비리는 물론 케이뱅크 특혜 의혹과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논란 등 국감 기간 핵심 이슈마다 이름을 올렸습니다.

국감 때 예보도 이와 관련된 각종 책임으로 적지 않은 공격을 받았는데요.

우리은행의 자율 경영 보장과 관련해서는 올 초 박상용 우리은행 사외이사가 했던 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상용 사외이사는 “언제든 우리은행에 다시 외풍이 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독립성은 정부가 약속해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켜야 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요.

우리은행 스스로 문제가 없다면 외풍이 없겠지만, 제대로 안되면 언제든 외풍은 온다는 취지였습니다.

이 말을 되새겨 보면 우리은행이 채용비리 등 문제로 예보가 다시 우리은행 경영에 신경을 쓰는 상황을 자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Q.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차기 행장을 선출해 혼란에 빠진 조직을 다시 안정시키는 것이 시급할 텐데요. 내부적으로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간 계파 싸움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요?

[기자]

네, 단순히 우리은행 조직 내부 서열 순서만 따지면, 사퇴한 이광구 행장과 직위 해제된 남기명 국내 부문장, 그리고 행장 대행을 맡게 된 손태승 글로벌 부문장 순인데요.

이 순서대로라면 손태승 부문장이 차기 행장으로 가장 유력합니다.

하지만 이사회는 이번 임추위 때 우리은행 내 상업·한일 계파 갈등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요.

이번 국감에서 우리은행의 채용비리가 터져 나온 배경에는 상업은행 출신인 이광구 행장을 견제한 한일은행 출신 세력이 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를 책임지고 물러난 이광구 행장 후임에 한일은행 출신인 손태승 부문장이 임명되면 계파 싸움에서 한쪽 손을 들어주는 꼴이 돼버립니다.

특히 과점주주들의 추천으로 구성된 현재 이사회 멤버들은 우리은행의 계파 갈등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조직 내 계파 싸움을 끊어내기 위해서 차기 행장에 수많은 외부 인물들이 거론되는 상황인데요.

하지만 외부 인사가 오는 것도 노조가 완강히 반대하고 있어 쉽지만은 않은데요.

여기에 예보마저 임추위 멤버로 활동을 시작하면, 우리은행 차기 행장 선출과 조직 안정화까지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