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기후협약 불량국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취임한 지 불과 두 달 만인 2001년 3월28일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교토의정서’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부시 대통령은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온실가스 의무 감축에서 배제된 기후협약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교토의정서를 실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탈퇴의 표면적인 이유는 개발도상국들이 참여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속내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경기가 둔화된 상태에서 온실가스 배출 규제까지 할 경우 경제사정이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미국의 탈퇴 선언은 유럽 등 다른 나라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중국에 이어 세계 온실가스 배출 2위 국가인 미국이 빠진 상태에서는 기후변화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은 그동안 기후변화협약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후 교토의정서(1997년)와 파리기후협약(2015년)을 거치는 25년 동안 미국은 줄곧 기후변화 대응체제의 발목을 잡아왔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1992년 리우 회의장에서 “미국인의 삶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1998년 앨 고어 부통령이 교토의정서에 서명했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의 비준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정부가 대통령 명령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겨우 파리협약을 비준한 것도 잠시 이번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4개월여 만에 또다시 탈퇴해버렸다.

최근에는 6년 넘게 내전에 시달린 시리아가 파리기후협약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이제 전 세계에서 파리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미국뿐이다. 미국이 기후협약 불량국가로 불리는 이유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올 7월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수개월 내에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하기는 했지만 여기에 얼마나 진정성이 담겨 있는지는 의문이다. 환경보다는 개발을 우선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미국에서 기후변화협약 불량국가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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