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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금석 숙명여대 교수는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종이접기 역사포럼’에서 “한반도의 종이 기원은 기원전 1세기 이전부터 이뤄진 것으로 짐작된다”며 “이후 고구려 영양왕 21년(AD 610년) 사신으로 간 승려 담징을 통해 제지술과 종이문화가 일본으로 전해졌기에 종이를 일본에 전한 것은 고대 한국이었고, 따라서 한민족의 종이접기 역사는 당연히 일본에 앞서있다”고 밝혔다.
채 교수는 ‘고깔, 종이접기’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종이접기 역사는 기원전에 이미 전래한 종이가 주술용이나 의례용으로 이용됐으며, 접는다는 의미로는 ‘첩’(疊)과 ‘접지’(摺紙)라는 단어가 함께 사용됐다”며 “우리나라 접기 형태의 원류는 고깔 쓰기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중국에 ‘절풍’(折風)을 유행시킨 한류의 원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민족은 고대시대부터 고깔이 풍속으로 이어져 왔는데, 고깔을 직물에서 종이로 대체해 만들기 시작하면서 종이접기가 대중화됐다”며 “삼국시대 때 주술이나 의례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래하면서 일본에서는 신(神)을 의미하는 ‘가미’가 종이가 됐다”고 소개했다.
채 교수는 “종이접기는 사각형을 시작으로, 사각형과 삼각형으로 종이 면을 접어 뒤집거나 비틀어 돌리는 방법을 이용함으로써 비시원(比始原)적인 한국 고유의 사상체계를 표현한다”며 “이는 고대부터 우주를 표상화 한 조형 기법으로 면을 휘고, 꼬고, 비틀어 전후, 좌우, 상하도 없는 비정향(比定向)적 성격을 다루는 현대과학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적 특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한국 상고시대부터 전해온 종이접기 문화에 내재한 사유체계가 얼마나 과학적인가를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은 환영사 원고에서 “중국에서 만들어진 바둑이 일본을 통해 서양에 알려진 것처럼 종이접기 역시 일본의 ‘오리가미’를 통해 서양으로 퍼져갔다”고 밝혔다. /하정연기자 ellenah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