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제언] 방향 잘 잡은 新남방정책...정부·기업·금융 '패키지 전략' 서둘러야

<文대통령 순방으로 본 아세안 정책>
성장세 가파른 '포스트차이나'
日 수십년 공들여 車시장 장악
우리도 IT인프라 등 적극 지원
日 텃밭서 입지 넓힐 방안 필요
文 "신남방정책, 아세안 지지"



문재인 대통령이 7일간의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마치고 15일 귀국한다. 순방 기간 중 문 대통령은 ‘신남방정책’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의 교류협력은 4대국 수준으로, 교역규모는 오는 2021년까지 중국 수준으로 높이는 게 골자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꼬였던 중국을 대체하는 시장으로 아세안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의 지렛대로도 아세안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14일 ‘아세안+3(한국·중국·일본)’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일정을 마친 뒤 동행한 기자들과 만나 “아세안 국가들에서 신남방정책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며 “인프라와 중소기업·금융·서비스·방산·스마트시티 등에 이르기까지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신남방정책에 대해 최근의 시류에서 적절하게 방향을 잡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금융이 어우러지는 패키지 전략을 만들지 않으면 신남방정책이 구두선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신남방정책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민혁기 산업연구원 산업통상정책연구실장은 이날 “아세안 10개국의 최근 10년간 경제성장률은 5.5%로 세계 평균인 3.7%를 웃돈다”며 “아세안은 통관 시스템 같은 인프라 부족을 호소하는데 우리가 해결해주면서 입지를 넓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신남방정책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아세안은 일본의 텃밭이다. 인구가 2억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의 지난해 자동차시장 판매 점유율 1위는 도요타로 38만2,610대(36%)를 팔았다. 현대자동차(1,324대)의 288배다. 지난해 아세안 상품시장 점유율은 일본이 9.5%로 7%인 우리나라를 2.5%포인트 앞선다.

일본계 2세와 3세들이 동남아 지역 주류무대에서 활동한다는 점도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 때문에 패키지 전략은 보다 정교해야 하고 정부와 금융사의 광범위한 협조가 필요하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일본과 중국의 단점들을 고려해 한국은 철저한 동반자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오랫동안 정부 차원에서 아세안에 공을 들여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5년 아세안 지역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우리나라가 4억8,068만달러였고 일본은 5억7,009만달러로 우리보다 8,941만달러나 많다. 베트남의 경우 일본 ODA는 10억7,492만달러로 우리(2억1,716만달러)의 다섯 배 수준이고 미얀마는 일본(3억5,113만달러)과 한국(2,123만달러) 간 차이가 무려 16.5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동남아 지역에서는 일본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며 “일본이 공장을 지어주고 원조를 해줬기 때문에 우리도 정부와 기업이 함께 나서고 국책금융기관이 프로젝트파이낸싱을 포함한 적극적인 지원을 해줘야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사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화해 분위기에 취해 중국 의존도가 다시 높아지면 경제적으로 중국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주요2개국(G2)’ 의존도는 수출이 38%, 수입이 30%에 달한다. 코리 가드너 미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은 최근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한국이 많게는 120억달러(약 13조5,000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전했다.

일본도 탈중국을 위해 아세안을 택했다. 일본의 아세안 투자규모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하락세를 보이다가 2006년부터 중국을 뛰어넘었다.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전략이었다. 이는 2012년 중국과의 센가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2015년 현재 일본 기업의 아세안 진출기업 수는 7,351개사로 전체의 25.2%를 차지한다. 비중으로는 1위다. 중국은 6,825개다.

특히 최근에는 일본 기업 가운데 중국을 탈출해 아세안으로 옮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가 해외거점을 재편했거나 할 예정인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5.3%가 중국에서 아세안으로 거점을 옮겼다고 답했다. 이는 전체 1위다. 특히 일본은 최근 아세안 진출기업이 제조업에서 금융보험업과 운수업 같은 서비스업으로 분야를 넓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아세안에서 일본을 뒤쫓기 위해서는 단기적 수익만 좇는 장사꾼식 접근을 지양하고 이들이 원하는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금융도 함께 가야 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이용화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신남방정책에서는 국가별 특징에 맞춰 1대1 매칭 방식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나라별로 필요로 하는 것들과 경제협력을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을 모아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김영필·임진혁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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