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국내 증권가에서 국고채 채권 매매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일시에 혼란에 빠졌다.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오름세를 나타내던 국고채 3년물이 장 마감을 앞두고 더욱 상승해 연간 최고치를 경신, 2.2%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매도가 있었지만 상승세는 과도했다. 금리상승을 견인한 주체는 정부였다.
기획재정부는 15일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입할 예정이었던 2018년 3월 만기 도래물 등 총 8개 국고채 매입을 돌연 취소한다고 한국은행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했다. 이 날 예정된 바이백 대상 국채는 1조원 규모로 13-1(만기 18년 3월), 15-3(만기 18년 6월), 13-5(만기 18년 9월), 8-5(만기 18년 9월), 15-7(만기 18년 12월), 15-1(만기 20년 3월), 10-3(만기 20년 6월), 15-4(국고 20년 9월)로 잔존만기 1년 미만~ 5년 사이의 단기물이다. 국고채 3년물이 유난히 큰 폭으로 상승한 이유다. 업계에 따르면 기재부는 이 내용을 국고채전문딜러(PD) 간사 기관에만 전달하고 양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가 하루 전에 국고채 매입을 취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일 “올해 세수가 260조원대로 국채 상환을 포함해 사용을 폭넓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발언 이후 장이 마감하기 직전에 기재부는 바이백을 취소했다. 기재부는 이에 대해 “연말 세수가 좋아져 이를 관리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던 중 바이백 취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은 매수를 하기로 한 날보다 하루 앞서 공지되면서 시장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장이 끝나자 국내 한 증권사 전문 딜러(PD)는 “기관끼리 구두로 한 약속도 쉽게 깰 수 없는데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을 엎었으니 향후 정부의 계획을 믿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딜러는 “김동연 장관이 국채 상환을 언급한 것을 두고 시장에서는 바이백을 늘리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돌연 1조원 가까이 되는 국채 매수를 통보 없이 취소하는 건 기재부가 시장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다는 의미”라고 비난했다.
통상 딜러들은 정부가 국채 매수 계획을 발표하면 이에 맞춰 물량을 미리 확보해둔다. 실적경쟁에 내몰린 PD사들이 평가 점수를 확보하기 위해 바이백대상채권을 선매수하는것. PD평가에서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바이백 물량 중 약 5% 가량을 채워야 한다. 딜러들은 정부가 국채 매수계획을 발표하면 해당 채권이 다소 비싸지는데도 울며 겨자 먹기로 대상 채권을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가 바이백을 돌연 취소하면서 시장이 사들인 물량은 온전히 손실로 남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1조원에 달하는 큰 매수 계획을 하루 만에 취소하면서 국내 채권시장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대부분 딜러들은 다음주로 예정된 기재부 바이백도 사실상 취소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이상규 기재부 국채과장은 “다음 주 바이백은 논의 과정에 있으나 특이사항이 없으면 그대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다음 주 바이백도 사실상 없는 것으로 보고 플레이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심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 투자심리는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이 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일 대비 3.4bp(1bp=0.01%) 내린 2.177%에 장을 마감했다. 김진평 삼성선물 연구원은 “김 장관의 발언을 고려할 때 향후 채권 발행 규모가 더욱 줄거나 바이백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채권 투자 심리가 상당히 취약해진 상황에서 나타난 갑작스러운 바이백 취소는 투자심리 회복을 보다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단기적으로 약세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서지혜기자 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