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웃은 韓통상…'유정용 강관 반덤핑' WTO 승소

SK하이닉스도 美 특허 분쟁서 이겨
서버용 메모리 수요 급증 속
美 보호무역 분위기 반전 기대

미 트럼프 행정부의 강도 높은 보호무역 기조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국내 산업계가 모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 세계 교역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세계무역기구(WTO)와 보호무역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한미 양국 간 벌어진 통상·특허 분쟁에서 우리 측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15일 정부에 따르면 WTO는 14일(현지시간) 미국이 지난 2014년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부과한 반덤핑 관세 조치가 WTO 협정 위반이라는 내용의 패널 보고서를 공개했다. 미 상무부는 2014년 7월 현대제철 등에 9.9~15.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고 그해 우리 정부는 반덤핑 관세가 부당하다며 WTO에 제소했다.

WTO는 미국의 반덤핑 관세 부과 근거가 되는 ‘덤핑률’ 산출이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한국에서 판매되는 유정용 강관이 워낙 소량인 탓에 내수 가격을 책정하기 어렵고 제3국 수출 가격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상무부가 정한 ‘구성 가격’으로 덤핑률을 산정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미국이 제시한 구성 가격 산출의 한 요소인 이윤율에 한국 기업이 아닌 다국적 기업의 높은 이윤율이 부당하게 적용됐다며 WTO에 제소했고 WTO가 이번에 한국 정부 손을 들어 줬다.


이와 함께 불공정 무역 행위를 조사하는 미 ITC는 이날 지난해 9월 반도체 업체 넷리스트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 침해 소송에서 ‘특허권 침해가 아니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넷리스트가 SK하이닉스의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가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기 때문에 수입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수출길이 막혔다면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었다”면서 “미 ITC의 판정으로 리스크가 사라졌다”고 안도했다.

산업계에서는 WTO와 미 ITC의 이번 판정이 계속되는 보호무역 조치로 침체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특히 미 정부 기관인 ITC의 판결을 두고서는 가전·태양광·철강 등 동시다발적으로 취해지고 있는 미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조치가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미 ITC가 SK하이닉스가 피소한 특허 침해 소송에서 자국 기업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ITC가 최근 삼성·LG 세탁기 등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추진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기조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ITC는 오는 21일 지난달 열린 공청회 결과를 바탕으로 구제 조치 방법과 수준을 결정하는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한 번에 풀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WTO와 ITC의 판결이 분위기 반전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유정용 강관에 대한 반덤핑 관세 조치가 협정 위반이라는 판정이 확정되고 미국의 이행절차가 완료되면 현재 부과되고 있는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대한 반덤핑 조치가 종료돼 우리 제품의 대미 수출 여건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재영·김상훈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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