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겸 감독 /사진=CGV아트하우스
23일 개봉을 앞둔 영화 ‘아기와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자친구를 쫓는 것도, 혼자 힘으로 아기를 책임져야 하는 것도 모두 포기하라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 속에 갈등하는 주인공 ‘도일’(이이경)의 ‘선택’을 조바심 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사라진 여자친구가 남겨두고 간 아기는 ‘도일’에게 책임져야 하지만 회피하고 싶은,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극복해야 하는 숙제 같은 존재이다. ‘아기’는 영화 속 주요한 메타포이자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인공 ‘아기’로 연기 경험이 전무한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손예준’군이 캐스팅이 되었다. 이보림 프로듀서 사촌의 아이이다. 손태겸 감독은 ‘아기’ 예준과의 첫 촬영에서 23번의 테이크 후에 비로소 완벽한 장면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천사 같은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해서 지옥 가겠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 손 감독은 예준이 가족의 도움으로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참 무던하고 낯가림이 덜한 아이였다. 무엇보다 예준이 부모님이 영화 촬영에 우호적이셨다. 그 박자들이 딱딱 맞아서 촬영이 가능했다. 예준이가 여러 회차를 찍어야 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끝까지 지지해주지 않았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생후 11개월 때 만났는데, 촬영 기간 2개월 사이로 아주 많이 성장하는 게 느껴지더라. 본 촬영 23회에 2달 정도 촬영을 했다. 나중에 자는 모습 찍을 때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니 2개월 전이랑 확실히 차이가 나긴 나더라. 예준이 부모님께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때 때 보시고선 굉장히 뿌듯해 하셨다. 훌쩍 훌쩍 하시면서 영화를 봤다고 말씀해주셨다. 이제 4살이 된 예준이가 ‘부국제’ GV도 참석했다. 아이를 보고 왜 천사라고 하지 않나. 최근에 조카가 예뻐서 바라본 게 15분 정도 시간이 지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1시간이 지나있더라. 그렇게 바라만 봐도 좋은 아이를 데리고 너무 고생을 시킨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기 역 손예준 군, 영화 ‘아기와 나’ 스틸
영화 ‘아기와 나’ 스틸
매 작품마다 보석 같은 배우를 발견하는 눈을 지닌 손태겸 감독은 배우 이수경의 인상적인 데뷔작인 ‘여름방학’(2013)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선재상, 미쟝센단편영화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그 연출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배우 임시완을 배우로서 성장하게 한 드라마 ‘미생’ 보다 한 발 앞서 임시완을 캐스팅 해 ‘미생 프리퀄’을 연출하기도 했다. 배우로서 임시완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인생 캐릭터 ‘장그래’를 만들어 준 것. 이번 ‘아기와 나’에선 주인공 이이경은 물론 어머니 역으로 나오는 박순천 배우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특히 손 감독이 아끼던 문장은 박순천 배우의 대사로 고스란히 사용됐다. 실제 어머니와 나눈 대사와, 병원에서 받은 힐링 상담의 기억을 담아낸 후반 장면이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잘 살고 있다’고 조용한 응원을 보내는 장면이다.
“어느 날 저희 어머니가 무슨 애기를 하다가 여고생 시절을 이야기하셨다. 이야기 끝 무렵에 언제 이렇게 늙었지? 란 말을 하셨다. 바쁘게 지낸다는 이유로 별다르게 효도를 해드리지 않았구나란 생각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또 여기에 병원에서 받은 상담의 기억을 어머니 캐릭터에 대입 시켰다.”
“대학을 다니면서 한참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긴장하면 위장에 탈이 잘 나서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녔었다. 그날도 예민한 위가 탈이나 내과에 갔는데, 병원 문 닫을 시간 다 돼서 갔었다. 의사 선생님이 마지막 손님이니 길게 이야기 해도 된다면서 문진을 길게 해주시면서 ‘내 친구가 이렇게 이렇게 해서 하늘 나라로 떠났다. 학생이 되게 걱정도 많고 신경도 많이 쓰는 성격이라 병원을 찾아오는데 엄청 잘 살고 있는거다. 대학 다니고 있다고 들었는데,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사람이 많다. 되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하셨다. 그 상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 때의 느낌을 영화로 풀어낼 수 있다면 관객들하고 나누리라란 생각을 했는데 이번 ’아기와 나‘에 담아낼 수 있었다.”
‘아기와 나’ 손태겸 감독
삶의 주변부에서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지닌 손태겸 감독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분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는 ‘모피코트를 입는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려주며 처음 생각한 가치가 바뀌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어떤 분께서 겨울만 되면 모피코트 옷을 입고 다니는 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동물 보호 측에서 보면 그 분을 긍정적인 시선 만으론 볼 수 없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아들 선물이었던거다. 아들이 공장에서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사준 유일한 옷이다고 하더라. 그 분이 다른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겠지만 이 옷을 죽을 때까지 입을 것이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스토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다른 이의 인생에 대해 말 할 땐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손태겸 감독은 단편 ‘야간비행’(2011)으로 ‘금기를 건드린 젊은 감독’이란 호칭과 함께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3등상 및 부산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를 석권하며 이미 ‘한국영화의 미래’로 주목을 받아왔다.
‘아기와 나’ 이후 그의 차기작은 2019년에 만날 수 있을 듯 하다. 그는 년도를 구체적으로 공표해야 소처럼 열심히 쓸 수 있다며 웃는다. “원체 느린 사람이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 있는, 주변에 항상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를 수 있는 걸 쓰려고 한다.”
그는 “인생은 마라톤이다. 그렇기 때문에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아버지가 한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다. 성실함을 무기로 거북이처럼 꾸준히 노력하는 손 감독의 재능은 성급하게 앞서가려고 하지 않아 더욱 빛났다.
“최근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아기와 나’ 영화를 보여드렸다. 그때 아버님이 ‘힘들더라도 끝까지 가라’고 말씀해주셨다. 전 진짜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다. 노력해야 겨우 할 수 있는 아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니까 길게 본다. 1등으로 달려도 끝나는 게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멀리 봐야 한다고 항상 생각을 한다. 롤 모델은 노장 감독인 마틴스콜세지 감독이다. 영화를 떠나서 그분의 자세가 정말 대단하다.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도 정말 본 받고 싶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고질병처럼 ‘불안감’은 따라 붙겠지만 계속 영화 작업을 해나가고 싶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