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블룸버그
이스라엘이 ‘반(反)이란’을 기치로 걸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연대를 모색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각료가 사우디 정부와 비공개 교류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밀월에 대한 관측은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정부 차원에서 연대 사실을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팔레스타인 보호를 위해 앞장서 목소리를 내온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손을 잡는다면 중동 이슬람권에 일대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유발 스테이니츠 이스라엘 에너지장관은 1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국방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와의 협력관계를 부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상대가 연대 사실을 비공개로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그는 “우리는 많은 아랍 및 무슬림 국가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며 “사우디든 다른 무슬림 국가든 우리는 상대국의 요구를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16일에는 가디 아이젠코트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이 사우디와 이란 관련 정보를 기꺼이 공유할 수 있다고 제안하며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새로운 국제동맹’ 결성 가능성까지 언급한 바 있다.
사우디 정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은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적 관계에서 해결돼야 하며 그전까지 이스라엘과의 관계 형성은 없을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표명해왔지만 스테이니츠 장관의 발언 이후 공식 반응은 하지 않고 있다.
1948년 건국 이후 네 차례나 중동국가와 전쟁을 벌인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연대 가능성은 지금까지 매체들을 통해 적잖이 제기돼왔다. 이슬람국가(IS) 세력 축소 이후 이란의 확장을 막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양국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국경을 맞댄 이스라엘에 불편한 존재이며 사우디 역시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이란의 확장세에 밀려 입지가 좁아진 상태다. 일각에서는 양국 동맹국인 미국이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를 유화시켜 ‘미국·이스라엘·사우디’ 삼각동맹을 구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동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미국의 도움이 절실한 사우디 입장에서 이스라엘의 제의를 마냥 거절할 수만은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손을 잡는다면 ‘이슬람 동포’인 팔레스타인에 등을 돌리는 것이어서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사우디가 이날 수니파 중심의 중동 국제기구인 ‘아랍연맹(AL)’을 소집해 이란·헤즈볼라를 성토하면서 이스라엘과의 ‘적과의 동침’보다는 ‘수니파 국가 간 공조’를 우선 모색하는 안전한 방향을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