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8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총리가 주재한 AI 관련 긴급 상황점검회의가 있었다. 관계 부처 장관들의 손에는 묵직한 자료가 들려 있었다.
이 총리가 던지는 특유의 송곳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고 한다. 일선 부처의 한 공무원은 “총리는 현안이 있으면 장차관에게 집요할 정도로 꼬치꼬치 캐묻는다”며 “회의 초반에는 장차관이 무안해하는 상황이 연출될 정도”라고 귀띔했다. 과거에는 겪어보지 못한 ‘질문 폭탄형’ 총리라는 얘기다.
여론은 호의적이다. 자기주장만 고집하다 대통령과 마찰을 빚었던 총리, 의전과 형식에 너무 신경을 쏟은 총리, 줏대 없는 대독 총리 등을 지켜본 국민들 눈에는 신선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상사 칭찬에 인색한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다. ‘현장을 직접 보지 않고는 못 견디는 성격’ ‘총리가 아니라 6급 공무원 같은 이 주사(主事)’ ‘서면보다 대면을 좋아하는 총리’ 등의 별칭이 따라다닌다.
포항 지진 당일에도 구두로 멋을 낸 국회의원들과 달리 운동화를 신고 자갈과 낙석이 뒹구는 재난 현장을 찾았다. 피해 장소를 둘러본 후에는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가 다시 포항시장을 불러 이재민 대책을 간곡하게 당부했다.
서울로 돌아온 후에는 재난안전 특별교부세 지급과 특별재난지역 선포안을 의결했다. 포항 지진 이후 5일 만이다. 지난해 경주 지진 때는 10일이 걸렸다. 그가 중시하는 ‘국정 속도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대변인 출신이다.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전달력도 트레이드마크다. 한 서기관급 공무원은 “행사장에서 이 총리의 연설을 들은 적이 있다. 총리 연설이야 뻔한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귀에 쏙쏙 잘 들어왔다”고 전했다. 기자 시절 글 잘 쓰기로 이름을 날렸던 명성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고 한다. 정계 입문 이후 정당과 선대위 등에서 다섯 번이나 대변인을 했던 전력도 한몫하고 있다.
그의 메시지는 짧지만 강렬하다. 관계장관회의에서 핵심 키워드를 내세우는가 하면 ‘첫째·둘째·셋째’ 등으로 전달하려는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이날 열린 AI 긴급 대책회의에서도 이 총리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를 뽑았다. 그는 “방역 키워드는 초동과 현장”이라며 “초동 방역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하고 신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것도 전직 총리들과 대비되는 비교 포인트다. 진심이 담긴 감정 표현은 공감을 자아낸다. 지난 17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순국선열의 날 행사에서 기념사를 하던 도중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었다.
18일 세월호 미수습자인 권재근씨와 권혁규군 빈소를 찾았을 때는 고인의 형에게 소주잔을 건넸다.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자기주장이 강해 무뚝뚝했던 이해찬 전 총리나 의전을 중시했던 황교안 전 총리와는 국정운영과 소통의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많다. 일각에서는 장수 총리로 무난하게 국정을 이끌었던 김황식 전 총리와 오버랩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 전 총리도 연평도 도발 전사자 추모식에서 우산 없이 40분간 비를 맞으며 산화한 젊은 병사들의 희생을 기렸다.
국민들은 그에게 ‘여니’라는 친근한 별명을 붙여줬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것과 흡사하다. 이 총리는 “젊은 여성이 오빠라고 부르는 것만큼 이 별명이 좋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자리에 있다. 일인(一人)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인(萬人)의 아픔과 눈물을 다독여주는 ‘여니 총리’로 남기를 국민들은 기대한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이낙연 국무총리가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조류인플루엔자(AI) 상황점검 및 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