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미 "우리 고전엔 없던 여성 이야기...내 목소리로 들려주게 돼 영광"

국립창극단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주인공 김금미 인터뷰

지난 9월 싱가포르 빅토리아 극장 한 가운데 선 김금미(사진). 국립창극단의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마지막 왕비 헤큐바 역을 맡은 김금미가 배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절규를 토해내자 순간 적막이 감돌았다. 울음이 섞였으나 눈물 흘리지 않는, 절규보다는 긴 세월 누르고 누른듯한 한(恨)의 소리가 극장을 가득 메우자 객석 곳곳에서 탄식이 이어진다. 막이 내리고 박수소리와 환호가 쏟아졌던 그날을 김금미는 지금도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한다.

“여성 소리꾼으로서 우리의 이야기를 좀 더 풀어놓지 못한다는 건 늘 아쉬움이 컸어요. 하지만 ‘트로이의 여인들’은 우리 고전에선 찾아보기 힘든, 땅을 지킨 여성들의 이야기죠. 이런 무대에서 주인공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내 기량을 해외에서까지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것만도 영광이에요.”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를 장식할 ‘토로이의 여인들’의 22일 개막을 앞두고 국립극장에서 만난 김금미는 막바지 공연 준비로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싱가포르 현지 공연을 마친지 겨우 2개월여. 공연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김금미에게 이번 공연 준비는 남다르다. 창극 공연으로는 드물게 공연기간이 11일에 달하는 까닭이다. “에너지를 150%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작품이에요. 제 비중이 70% 이상 되고요. 무너져선 안 된다는 생각에 감정선을 다잡는 것부터 체력 관리까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하고 있어요.”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에우리피데스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배삼식 작가가 쓰고, 싱가포르 연출가 옹켄센이 연출한 이 작품은 초연 때부터 매진 행렬을 이어갔고 지난 9월 싱가포르에 이어 내년에는 영국 런던 주요 페스티벌의 초청이 잇따를 정도로 안팎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로 김금미는 연출과 극본, 작창, 작곡에 이르는 ‘완벽한 앙상블’을 꼽았다.

“옹켄센은 20년전 안숙선 선생의 6시간짜리 춘향가 완창 판소리를 듣고 한국 판소리에 빠졌대요. 그 이후부터 창극을 연출하겠다는 열망으로 판소리부터 각종 전통악기 공연을 찾아다닐 정도로 경험을 쌓았으니 연출가로서 전문성과 명확한 방향성까지 갖춘 거죠. 여기에 작창을 맡은 안숙선 선생과 정재일 작곡가가 만났으니 음악적으로 완벽할 수 밖에요.”


김금미가 꼽는 이 작품의 또 다른 힘은 시대에 맞는 메시지다. 김금미는 “이 작품은 ‘내가 밟고 일어서야 할 땅이 없어져선 안 된다’고 끊임 없이 이야기 한다”며 “온갖 부침 속에서도 손을 맞잡고 일어선 우리 국민들에게 굵직한 메시지를 주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외할머니가 남도민요 ‘육자배기’의 대가 김옥진 명창, 어머니가 ‘여성국극의 대모’로 통하는 홍성덕 명창으로, 대대손손 국악가 집안 출신인 김금미지만 안호상 전 국립극장 극장장·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부임 후 이어진 창극의 변화를 누구보다 반기는 사람이 그다.

김금미는 “다른 장르의 작가와 연출자들이 탐내는 장르가 되지 않으면 어떤 장르든 생명력이 없는데 창극단에 입단한 1999년만 해도 창극은 낡고 매력 없는 장르였다”며 “지금 내로라하는 작가와 연출자들이 창극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창극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방증”이라며 웃었다.

김금미는 판소리 5바탕 완창에도 도전 중이다. 지난해에는 수궁가를 완창했고 내년에는 심청가를 들려준다. 공연 전 준비과정만 해도 최소 수개월, 매일 완창해야 하는 고된 과정이지만 김금미는 마다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긴다.

“창극 무대도 늘 보람 있지만 완창은 나만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재미와 맛이 있어요. 무대를 가리지 않고 소리꾼 김금미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사진제공=국립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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