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서울경제신문이 산업연구원·현대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주최한 ‘1997년 환란…그 후 20년’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지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고 난 뒤 제조업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 하나 있다. 바로 위기 직후에는 부실징후기업이 급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7년 제조업종 중 부실징후기업의 비중은 30.6%였다. 이 수치는 위기를 수습하고 2년 뒤인 1999년 19.5%로 급감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 다시 21.3%까지 늘어나게 된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뒤 2010년 이 비중은 17.4%까지 내려갔다가 지난해 다시 26.5%까지 반등했다.
또 제조업 중 한계기업 비중은 1997년 7.9%에서 2004년 4.0%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9.3%로 다시 크게 증가했다. 부실징후기업은 한 해 동안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을 의미하며 이러한 악순환이 3년 연속으로 발생하면 한계기업으로 분류된다.
21일 플라자호텔에서 서울경제신문이 산업연구원·현대경제연구원과 공동 개최한 ‘1997년 환란…그 후 20년’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 강연자로 나선 오영석 산업연구원 통계분석실장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외환·금융위기 이후 제조 기업들의 유동성 문제는 크게 개선됐지만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국가적으로 큰 위기 직후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로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잠재된 위험은 제거되지 않고 또 다른 형태로 서서히 발톱을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현상은 업종별로 보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환란 이후 20년간 자동차·섬유·석유화학·철강 업종의 한계기업과 부실징후기업의 비중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1997년과 2008년 직후 최저점을 찍고 다시 반등하는 전형적인 ‘더블유(W)’자 곡선이 그려진다.
오 실장은 “위기를 극복한 후 노동생산성 부진을 수반한 성장률이 둔화되고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추세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며 “특히 2010년 이후 계속 부실징후기업과 한계기업이 늘어나고 있어 제3의 위기를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오 실장이 제시한 솔루션은 ‘선제적 산업 구조조정’이다. 기업 수준의 부실 징후만이 아니라 산업·품목 수준의 부실 징후를 함께 고려해 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진단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오 실장은 “부실 징후를 사전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기업은 자율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게 하고 정부는 정책의 유연성을 높이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적용의 문턱도 낮춰야 한다는 게 오 실장의 판단이다. 그는 “기활법을 산업정책 기능 강화와 연계해 활용해야 한다”며 “적용 대상을 과잉공급 업종에서 전 업종으로 확대하고 요건도 사업 구조 변경과 사업 혁신 둘 중 하나라도 만족하면 적용하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산업구조 고도화’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등 미래 유망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맞춘 비즈니스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는 의미다. 또 기존 금융권 중심으로 진행됐던 구조조정 방식인 사후적 산업 구조조정도 함께 가져야 한다는 진단도 내놨다. 오 실장은 “최근 우리나라 제조업의 부진은 글로벌 경기침체, 국제분업구조의 변화 등 외부적 요인과 함께 생산성·경쟁력·수익성 부진의 내부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선제적 산업 구조조정과 산업구조 고도화, 사후적 기업 구조조정의 3박자가 맞아떨어져야 적기에 대응이 가능하고 이로써 구조조정의 국민경제적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