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공청회가 무산된 직후 언론은 주로 다음의 두 가지를 보도했다. 농축산단체가 공청회 단상을 점거해 공청회가 파행을 겪었다는 점과 개정 협상으로 우리나라의 제조업은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소폭의 경제효과(0.0004%~0.0007%)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력을 동원해 공청회 자체를 막은 농축산단체의 구태도 비난받아야 하지만 공청회 발제 자료는 개정 협상의 핵심을 제시하지 못해 아쉬웠다. 협정 개정으로 경제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면 미국과의 FTA 개정 협상에 떳떳하게 나설 수 있을 것이고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금액까지 밝혀가면서 한국이 자국산 고가무기류의 구매를 약속했다고 언급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10여년 전 한미 FTA를 추진할 당시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워낙 반대하는 진영이 많아 대통령까지 나서도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한미 FTA는 물론이고 통상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 수준이 많이 개선됐다. 정부 측 자료에 나와 있듯이 한미 FTA 이행 5년 동안 세계 무역은 12% 감소했으나 한미 양국 간의 무역 규모는 12% 늘어 한미 FTA의 경제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10여년 전 한미 FTA 협상 기간 중 한미 FTA에 반대했던 단체들도 그동안 한미 FTA의 경제효과를 목도하고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정 개정 요구를 우려하고 있다.
한미 FTA 개정 사항에 대한 통상당국의 고민을 제시하고 국익에 맞는 협상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공청회를 활용해야 한다. 피해 산업의 반대도 있지만 다수의 국민은 지지하고 있다. FTA 개정으로 이익을 볼 수 있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우려되는 부분을 제시하고 국익 차원의 대응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 국민들의 통상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한미 FTA 개정 협상의 주안점은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무역수지 흑자의 80% 내외를 차지하는 자동차 교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집약된다. 이 부분은 6월 말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의에서도 제기됐고 지난주 미국에서 우리나라 여당 대표를 면담한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도 언급한 사항이다.
또 우리나라에 민감한 사항들이 제기될 수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개정 협상의 목표를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미 의회의 통상 분야 실력자들이 주장해온 FTA 이행과 관련한 사항도 우리는 고민해야 하고 간간이 흘러나온 농업 분야의 추가 개방도 우려된다.
미국 농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폐기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백악관이 나서 폐기론을 서둘러 진화했지만 미 농업계는 현재의 수출 실적에 만족하고 있다. 미 축산 업계가 관세 인하 일정 조정을 요구할 수 있으나 과거 광우병 촛불 사태로 인한 수출 중단을 우려해 한국 국민의 정서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에 요구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신규 무역제한조치 금지, 미국의 전문직 비자쿼터 확대, 무역구제 이행 절차 준수, 투자자-정부 제소권(ISD) 합리화, 연구개발(R&D) 협력 등을 받아낼 수 있다. FTA 정신에 어긋나게 일방적인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발동하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는 장치를 개정 협상으로 모색할 수 있다. 미국과의 협상 목표는 덜 내주는 것이 될 것이고 이들 중 몇 개라도 관철시켜 손실을 줄여야 할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한미 FTA 개정 협상은 우리나라가 양보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협정 개정으로 경제이익을 볼 수 있다는 내용으로 발제하고 토론을 기획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오는 12월1일 열리는 공청회 발제는 한미 FTA 협상에 대한 통상당국의 고민을 요약해 제시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피해 업계와 당면한 과제를 협의하는 자리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