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준 기자 <경제부>
최근 국민연금공단이 KB금융지주 노동조합이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에 찬성한 것을 두고 뒷말이 많다. 정부가 노동자의 기업 경영 참여 확대가 핵심인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공단이 ‘코드 맞추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김성주 공단 이사장은 지난 22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찬성 결정은 공단 내 기금운용본부가 독립적으로 판단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이사장인 나조차 결정을 사전 보고 받지 않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의혹의 눈초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일단 시점이다. 문형표 전임 공단 이사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직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 1년도 안 됐다. 이 사건으로 국민들의 뇌리에는 ‘국민연금이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에서 정부를 따라간다’는 인식이 박혔다. 물론 이후 정권이 바뀌었고 새로운 이사장은 “권력과 자본의 개입을 막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인식을 변화시킬 만한 눈에 보이는 변화는 아직 없다.
더구나 KB금융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는 변화는커녕 이전에 지적됐던 문제를 답습하는 모습도 보였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기본적으로 기금운용본부 내부에서 결정하지만 찬성·반대를 정하기 곤란한 사안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하게 돼 있다. 국민연금의 독립성·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다. 공단은 이번에도 내부 판단만으로 노동이사에 찬성했다.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노조가 KB의 주주여서 ‘일상적인 주주제안’을 한 것인데 특별하게 다뤄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노조가 주주제안으로 이사를 추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공단 역시 “흔치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고 했다. 또 노조 추천 이사라면 기업 의사 결정 과정에서 성과급을 달라, 임금을 높여달라 등 노조 이익을 대변하는 주장을 할 가능성이 높다.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일 수 있다. 마땅히 전문위원회의 객관적인 판단을 구했어야 할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위원회 회부를 놓고 논란이 잇따르는 데는 회부 기준 자체의 문제도 있다. 기금운용본부가 찬반을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회부한다는 기준이 너무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위원회가 과반수 찬성으로 회부를 요청하면 기금운용본부는 따라야 한다’ 등 규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제도 보완 움직임도 딱히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사안만으로 당장 제도를 고칠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완전히 새로운 국민연금으로 거듭나겠다’는 김 이사장 취임사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번 싹튼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말이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 /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