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 교수
연말이 다가오면 한 해를 굽어보게 된다. 뭔가 뚜렷한 성과가 있으면 힘은 들었지만 한 해를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반면 무엇을 했는지 확실하지 않으면 공사다망(公私多忙)하게 보냈어도 어깨가 처지게 된다. 그리해 공사다망에서 바쁘다는 망(忙) 자 대신에 없다는 망(亡) 자를 써서 공사가 다 망했다는 자조적인 표현을 쓰기도 한다. 현대인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가장 바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도보로 이동하던 시절에는 활동 반경이 마을 단위로 좁았지만 오늘날 교통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활동 반경이 수시로 국경을 넘나들 정도로 넓어졌다. 활동 반경이 늘어나면 이전에 꿈조차 꾸지 못하던 일이 가능해지므로 할 일도 자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사람은 서면 앉고 싶어 하고 앉으면 눕고 싶어 한다. 서는 것보다 앉는 것이 편하고 눕는 것이 앉는 것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공자와 묵자가 세상을 구한다는 포부를 지녔겠지만 편히 앉지도 못하고 누울 겨를도 가지지 못했으니 편하게 세상을 살지 못한 셈이다. 이상을 추구하는 사상가의 관점에서 보면 공자와 묵자는 일상과 신체의 고통을 대수로이 간주하지 않았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편한 것을 찾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자리가 따뜻해질 겨를이 없었던 공자와 굴뚝이 검게 변할 여유가 없었던 묵자의 삶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으리라 짐작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최근에 서서 일하는 사람의 노동이 고통스러운데도 불구하고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한 ‘보이지 않는 고통(2017, 동녘)’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여행을 가서 먼 거리를 걷거나 미술관과 박물관의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종아리가 아프다는 것을 느끼고 잠시 다리를 쉬게 해줄 의자를 찾게 된다. 반면 마트나 백화점을 가면 판매를 도와주고 결제를 하는 경우 소비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신속한 처리를 위해 거의 대부분 장시간 서서 일하게 된다. 우리는 박물관을 관람할 때 관람객이 쉴 수 있는 의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마트에서 계산할 때 계산원이 앉을 수 있는 의자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책에서는 이를 ‘공감 격차’로 설명하고 있다. 박물관의 의자는 공감이 쉽게 되는 반면 백화점의 의자는 공감이 쉽사리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테니스를 치고 키보드를 두드리면 팔목이 아프다는 것에 공감하지만 경비와 초병이 장시간 부동의 자세로 서 있으면 발과 허리가 아프다는 것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공자와 묵자를 사상가로만 바라보면 그들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열정을 쏟으며 흘렀던 땀과 고통을 놓치게 된다. 백화점을 이용하며 고객의 질 높은 대우만을 앞세우면 그 대우에 가려서 잘 드러나지 않는 눈물과 고통을 간과하게 된다. 한 해의 한 달을 남겨둔 시점에서 빠듯하게 살아온 삶에 박차를 가할 게 아니라 여유를 주고, 편하게 느껴온 노동에 더 높은 질을 요구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고통에 공감하는 인간애를 발휘해보자. 그러면 연말이 느긋하고 따뜻해지지 않을까.